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대법원 첫 판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에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기록을 남기는 것도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혐의 일부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지난 18일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 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한 행위는 실제 전화 통화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연인 관계이던 피해자와 돈 문제로 다툰 뒤 휴대전화 번호가 차단당하자 '찾는 순간 너는 끝이다'라는 문자메시지와 피해자 어머니의 집 사진을 찍어 보내는 등 9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29차례 전화한 혐의(정보통신망법·스토킹처벌법 위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다만 피해자가 A씨의 전화를 한 번도 받지 않아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기록만 남았는데 이를 형사처벌 대상인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유·무죄 판단이 갈렸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A씨가 보낸 문자와 전화 모두 스토킹 행위라고 봤다. 전화를 받지 않아 부재중 전화 기록으로 남았더라도 피해자가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2심 법원이었던 부산지법 형사2-1부(김윤영·권준범·양우석)는 부재중 전화 기록을 남긴 행위는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2심재판부는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낸 것이 아니고 부재중 전화 표시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여서 스토킹처벌법에서 말하는 글이나 부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재중 전화를 스토킹범죄로 볼지는 2021년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법원에서 줄곧 의견이 엇갈렸던 문제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우편·전화·팩스·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스토킹 행위로 규정한다.

그동안 스토킹처벌법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없어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를 정보통신망법상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2005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부재중 전화는 스토킹범죄로 볼 수 없다는 하급심 판결이 적잖았다. 부산지법 항소심 재판부도 이때 판례를 근거로 무죄로 파단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동안의 혼란을 정리했다. 대법원 3부는 "스토킹처벌법 조항과 구 정보통신망법 조항은 구성요건이 달라 2005년 판례를 스토킹처벌법 위반에 대한 해석에 적용할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발신자 정보 없음 표시 또는 부재중 전화 표시가 남겨지도록 한 행위는 쟁점 조항 스토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또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피해자에게 유발되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라며 "오히려 스토킹행위가 반복되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스토킹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정도가 심각해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 때문에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