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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 선정

지자체 무능에 동력 잃은 국책사업 … 선심성 예타부터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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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다시 시작이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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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아쉬움 속에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행사가 지방자치 부활 이후 덩치와 권한이 커진 지방자치단체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뒤 급할 때는 기업과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고, 책임은 외면하는 등 지자체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60년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원(기초·광역) 선거가 실시되면서 31년 만에 부활했다. 1995년에는 시도지사, 시·군·구청장까지 선거로 뽑으면서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가 완성됐다.

이를 기점으로 지자체 권한은 막강해졌다. 단체장은 각종 인허가권과 인사·예산을 주무르며 지방의 '제왕적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인구 100만명 이상인 기초단체는 특례시로 지정돼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제주도와 강원도는 특별자치도로 격상되는 등 최근 권한이 더 세지고 있다.

문제는 위상이 높아진 지자체가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앞다퉈 대규모 사업을 유치하지만 정작 흥행에 실패하거나 혈세 낭비로 그치는 일이 많고,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국민이 뒤처리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방공항이다. 13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인천공항을 포함한 전국 15개 공항 가운데 인천·제주·김해·김포공항 4곳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은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공항 적자는 공항공사가 제주·김해·김포공항을 운영해 번 돈으로 메우고 있다.

적자 공항 중에는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한 몸이 돼 만든 곳이 적지 않다. 양양·무안·예천·울진공항이 대표적이다. 경북 예천공항은 아예 문을 닫았고, 전남 무안공항은 매년 220억원 이상 운영비가 들어가지만 지난해 매출은 20억원에 불과했다. 통일에 대비해 거점 공항으로 육성하겠다며 강원·영동권 정치인이 밀어붙인 양양공항(2002년 개항)도 국제선이 멈추면서 지난해 142억원의 적자를 냈다.

대다수 지방 공항이 적자 수렁에 빠졌는데도 '지자체·지역 정치권발' 공항 신설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 남부지역 국제공항 건설을 공약했고, 충남도는 20년 숙원 사업이라며 서산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보다 진도가 더 나간 부산 가덕도, 대구경북, 흑산도, 울릉도, 제주 제2공항 등까지 합하면 최소 9개 이상의 공항이 더 생길 판이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교수는 "대부분 지방 공항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면서 "정말 공항이 필요하다면 지자체가 돈을 대 짓고 운영까지 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정도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카드도 조심해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책사업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는 무리한 선심성 예타 면제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중에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도 적지 않은데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총선 야합'으로 졸속으로 추진하다가는 국가 재정이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타 면제 실패 사례가 전남 영암 F1 경주장이다. 예타를 면제받아 혈세 4285억원을 들여 2010년 개장해 2013년까지 경기를 개최했지만 이후 흥행 문제로 개최를 포기했다. 현재는 1000억원대 빚만 남은 애물단지가 됐다. 경주장은 국내 대회나 동호인, 개발 기술 시험용으로 전락했다. 방문객도 2016년 19만명에서 2019년 13만명, 지난해 11만명으로 매년 줄고 있다. 연간 수입은 30억원 안팎에 불과해 운영비를 겨우 건지는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추진돼 온 경북도 '3대 문화권 사업'은 예타 면제 사업의 전형적인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경북도 3대 문화권 사업은 유교(북부권)·가야(동부권)·신라(남서부권) 문화권 등 각 지역의 역사 자원을 관광화한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경제성 분석과 수요 조사 등 철저한 타당성조사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하얀 코끼리(수익성 없고 쓸모없는 투자를 일컫는 용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내 22개 시·군에서 각종 테마파크, 문화단지, 공원, 산책길 조성 등 명목으로 43개 사업을 추진했고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만 2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장한 경북 안동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은 지난해 2억2400만원을 운영 수입으로 거둬들였지만 운영비로 19억3800만원이 나갔다. 2020년 개장한 경북 영천 화랑설화마을도 운영비가 수입보다 많아 14억3700만원 적자다. 연간 방문객 수는 2021년 7만2035명에서 지난해 7만3157명으로 큰 변동이 없다.

최진혁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는 실효성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상호 견제는 물론이고 사업 효율성과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특히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사업이 엎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법적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홍구 기자 / 우성덕 기자 / 송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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