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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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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영화 탄압에 맞서 싸운 강대선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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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철폐 운동 앞장서

한겨레

강대선 감독. 한국영상자료원


‘여고시절’(1972), ‘흑녀’(1980) 등 50여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1980년대 군사정권의 검열폐지를 위해 싸웠던 강대선 감독이 지난 12일 별세했다. 향년 89.

1934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학 시절 잡지 영화세계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60년대 초 신상옥 감독과 함께 신필름을 창립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9년 형인 강대창, 강대진과 삼영필름을 만들어 ‘여고생의 첫사랑’(1971)으로 감독 데뷔를 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듬해 ‘여고시절’(1972)로 여고생 관객층의 지지를 얻으며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1974년에는 대만 국영영화사와의 합작으로 ‘5천리 대도망’(1974)을 연출, 제작해 동남아와 유럽, 미국 등지에 50만달러에 수출하기도 했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시나리오 사전 심의와 필름 검열 등 영화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영화인협회(현 영화인총연합회) 소속의 영화감독들과 함께 영화예술 창작의 자유 보장을 위해 ‘영화법 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검열철폐, 제작 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영화법 개정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의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6년 고인이 위원장을 맡았던 당시 영화법 개정이 이뤄졌다. 1990년에는 남북한 영화교류를 추진하여 분단 이후 처음 남북 영화가 한자리에서 상영되는 뉴욕남북영화제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혁진씨, 딸 인희·승원씨 등이 있다. 빈소는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5일 오전 10시.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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