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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前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해사법 전문가, 경청하는 변호사” [법조 Zoom In/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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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일 때 재판에서 양쪽 당사자 의견을 듣다 보면 ‘이런 걸 주장하면 좋겠다’고 하는 게 있었는데 말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는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법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리겠습니다.”

동아일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이성철 대표변호사가 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평산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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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평산 이성철 대표변호사(66·사법연수원 16기)는 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법대 위에 있을 때와 변호인 석에 앉을 때의 차이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변호사는 1998년부터 25년 넘게 판사로 근무하다 올해 3월 법원을 떠났다. 1980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변호사는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98년 광주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국제거래법(해상), 의료, 지적재산, 파산, 형사부장, 수석부장, 그리고 항소재판부만 10여년 이상 담당한 재판 전문가다. 이 변호사는 바쁜 재판 일정에도 틈틈이 <형사실무 판례>, 해상법 논문집 <법과 등대>를 출간하며 더 나은 법원, 더 공평한 판결을 위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변호사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논란이 됐던 ‘역사교과서 전쟁’ 관련 소송 1심 재판장 등 다수의 굵직한 사건을 판결해왔다. 당시 금성출판사가 발행하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저자 5명이 금성출판사를 상대로 저작인격권 침해정지 청구 소송을 냈는데, 이 변호사가 재판장인 당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변호사는 “저작권 침해에 중점을 두고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려고 했었다”며 “판결은 시대 정권에 따라 변하지 않고 시대에 살아있는 판결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해사법 전문이라는 특기를 살려 ‘세월호 사건’, ‘허베이 스프리트호 유류 오염사건’, ‘한진해운 물류대란’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논문을 기고하며 분쟁 해결 방안을 제시해 왔다. 2015년 발표한 논문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 규명과 보상 시스템>에서는 “검찰 수사는 형사처벌에 필요한 부분에 한해 진행된다”며 “결국 최종적인 사고 원인은 충분한 자료 확보나 전문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해양안전심판원이 밝혀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현재는 해양안전심판원의 선박충돌사건을 맡아 변호하고 있다.

논문집의 표지 사진을 직접 찍을 만큼 사진에도 관심이 많다. 취미로 지은 시를 저서에 실을 때도 등단 시인들에게 수차례 자문을 구할 만큼 신중한 성품을 가졌다. 이 변호사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변호사로서 반년여간 ‘법원 밖’ 적응기를 거친 뒤 돌아본 법관으로서의 소회와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변호사가 된 소감은
“법관일 때와 변호사일 때 둘 다 국민과 당사자를 위해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항소재판부에만 10년 이상 있었는데, 단순히 승소와 패소 여부를 떠나 소송 과정에서 얻은 마음 속 고통이 오래 간다고 느꼈다. 파산 재판부 부장 당시 금전 피해를 떠나 재판에서 지면 인생의 상당 기간을 정신적, 재산적 황무지 상태로 피폐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참 안타까웠다. 이제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에게 희망을 찾아주고 격려해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려고 한다.”

-해사법 전문가인데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원래는 국제거래 쪽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 시절 국제적 법률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다. 그러다 법원에 들어가 국제거래부 재판 업무를 했다. 일반 재판부보다 전문성 있는 부서였다. 논문도 부탁해서 해외에서 들여오고 관련 세미나 사회도 보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국제거래의 시작은 해상 부분이다. 배에서 배로 물건을 운송한 것이 시초가 돼 선박 운송과 항공 운송, 그리고 국제 거래가 발전했다. 해상법을 잘 하면 국제거래법이 쉽다. 현재 연세대에서 운송법 강의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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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대표변호사가 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평산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는 모습.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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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일 때와 변호사의 차이는
“법관으로 일 할 때 양쪽 말을 다 들어보면 이 얘기는 이 부분이 맞고 저 부분이 취약하다는 개념이 있었다. 이 쪽에서는 이런 걸 주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심판이 답을 가르쳐주는 꼴이 되니 말을 못 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의뢰인의 대리인 입장에서 한 쪽의 주장을 마음 편하게 하게 됐다. 법관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쓴 서면과 증거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기기 위해 상대 말과 재판장 말을 경청한다. 경청은 재판의 기본이다. 이제는 우리 쪽 당사자에게 유리한 변론을 위해 경청한다.”

-스스로를 어떤 법관이었다고 평가하나
“판결에 늘 신중을 가하려고 했다. 2019년 청주지법 근무 당시 괴산군, 진천군, 고흥군 3개 군법원에 1년간 재판장으로 있을 때 상소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제1민사부장(선임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장검증, 조정, 경청 등을 통해 되도록 상소 없는 판결을 하려고 노력했다.“

-법관일 때 기억에 남는 사건은
“수석재판부에 있을 때 모 종교단체 신도 부부가 자녀의 수혈을 반대해 법정에 온 사건이 있었다.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영아의 수혈을 반대한 사건인데, 당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병원은 수혈을 시행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후 부모가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 무혈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사망했다. 의사가 죽였을까, 법률가가 죽였을까, 부모가 죽였을까.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당시에도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거짓이 없었다. 결국 ‘친권자가 수술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했지만 아이가 세상을 떠나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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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대표변호사가 법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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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에도 공을 크게 들여왔는데
“야심작 <형사실무와 판례>는 10년 동안 만든 책이다. 책을 1년 만에 만들면 시효는 1년 밖에 안 간다는 말이 있다. 10년 동안 틈틈이 만들었다.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있는 책은 형법 1조 2조 3조 식으로 나열하는 교과서형인데 정작 1조에 관련된 사건 예시가 없다. 이 책에는 형사실무는 물론 성폭력, 명예훼손, 저작권 침해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생생한 판결과 이에 대한 간단한 평석이 담겨있다.

-논문도 여럿 게재했는데
“논문집 <법과 등대>는 그동안 법원에 있으면서 대법원 국제규범연구반, 국제거래실무연구회 회장, 한국해법학회 부회장, 고문으로서 참석하거나 발표한 세미나, 직접 다룬 사건 등을 정리해 등재 학술지 등에 게재한 논문들의 모음이다. 20년에 걸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형사실무와 판례>는 후배들을 위해 업데이트 할 예정이다. <법과 등대>도 앞으로 좋은 사건을 해결하고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보완할 예정이다. 변호사로서 당사자를 경청해 그분들의 억울한 부분을 도와주고 마음에 짐 없이 살 수 있도록 좋은 동반자가 되도록 하겠다.”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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