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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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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격리인가…장애인 탈시설 예산 늘려야”[2024 총선기획-④장애인의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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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김정하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상임활동가

[후마니타스연구소-주간경향 공동기획]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타기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2021년 12월 3일 시작된 이후 지난 11월 13일로 466일째를 맞았다. 이날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주간경향이 공동으로 기획한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 시민에게’ 강연의 마지막 강사로 나선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시민권이 온전히 보장될 때까지” 지하철 행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아침도 수도권 4호선 혜화역에서 ‘지하철 행동’을 하고 온 터였다.

그가 집회에서 소개받을 때의 일화를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우리 단체의 이름이 길다 보니 사회자가 가끔 이렇게 부르곤 해요.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오셨습니까’라고요.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한국사회가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려는 사회인지, 장애인을 ‘철폐’하려고 하는 사회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박 대표는 1983년 행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장애를 입게 됐다. 여러 해 절망 속에 살았다. 죽더라도 교회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에 형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탔지만 “왜 119를 부르지 택시를 타냐”는 기사의 핀잔에 중간에 내렸던 일도 언급했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교장으로 일하면서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1999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지하철 리프트가 추락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리프트가 불편하니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주세요라고 당시 서울시장에 요구했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결국 2년간 소송 끝에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바뀐 건 없었다. 오히려 2001년 12월 오이도역에서 지하철 리프트가 추락해 노부부 중 장애인 아내가 죽고, 남편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비슷한 사고는 발산역에서, 신내역에서 되풀이됐다. 서울의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는 전장연의 요구는 더디게 실행됐다. 2021년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선전전을 시작한 이유다.

경향신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11월 13일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개최한 ‘경향시민대학-시민이 동료시민에게’ 강의에서 ‘한국사회, 차별과 혐오의 민낯-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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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없이 권리 없다”

이동하지 못하면 교육을 받을 기회도, 일할 권리도, 건강권도, 다른 사람과 교류할 자유도 제한된다. 이동하더라도 안전하지 않으니 늘 불편하고, 죽음의 위기마저 겪어야 한다. 신체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따르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시민의 기본권이다. 장애인에게는 그러나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권리다. 그 권리를 달라고 20년 넘게 싸우고 있다. 박 대표는 “예산 없이는 권리도 없다”고 강조했다.

“맛있는 과자를 주고, 연예인이 공연을 하는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자,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2000년부터 정부가 장애인실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달에 몇 번 외출하냐고 물었는데 70% 넘는 사람들이 한 달에 다섯 번도 못 한다고 답했죠. 계단이 있고, 거리에 턱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말했죠. 그렇게 외출을 못 하면 교육을 받기 어렵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교육도 40% 가깝게 받지 못했다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도 이동을 하고, 교육을 받고, 노동하면서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살자. 이를 위한 ‘장애인권리예산’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예산으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반짝 관심이 쏠렸다, 곧 잊히길 반복했다.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돌봄 활동 등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은 효율성과 비용의 문제를 들먹이는 기재부의 칼날에 곧잘 잘려나갔다. 2023년 예산안의 경우 전장연이 증액을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의 0.8%인 106억원만 반영됐다. 내년 예산안도 비슷하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은 거의 증액되지 않았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이 지난 7월 개정되면서 특별교통수단의 24시간 운행과 인접 시·군을 넘나드는 광역이동이 가능해졌지만, 정작 운전원 인건비로 배정된 예산이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2021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에 따라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됐다. 교통약자 5개년 계획에 따라 4차 계획연도(2022~2026년) 저상버스 도입 목표율도 62.0%로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달성률은 32.8%에 불과하다. 정부의 의지도 약해지고 있다. 내년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은 1674억9500만원으로 올해보다 11.6% 줄었다. 전장연은 내년 정부 예산안을 ‘이동할 자유를 무시한 예산’이라고 보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를 권리가 아닌 비용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낯설지 않다. 박 대표는 이날 강연 중 넷플릭스에 올라온 단편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Forgive us our trespasses)를 소개했다. 영화는 나치의 장애인 안락사 정책인 ‘T4 작전’을 소재로 했다. 영화 말미의 자막은 “1939년 히틀러가 실행한 T4 작전으로 인해 30만명이 넘는 장애인이 학살당했으며 추가 40만명은 강제 불임수술을 당했다. 이 비밀 프로그램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중 수용소에서 사용된 가스실 기술이 개발되었다”라고 나온다. 차별과 혐오가 끔찍한 학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전장연을 민주노총에 이어 폭력 조장 단체로 꼽았다. 서울시는 6억5290만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박 대표는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마틴 루서 킹은 비폭력 흑인 인권 운동을 하면서 최소 30번 정도 구속을 당합니다. 경찰은 경찰 명령에 불복종한 혐의, 인도를 막고 허가 없이 행진했다는 이유 등을 들었죠. 우리도 만만찮습니다. 같은 논리라면 지금은 우리도 폭력 조장단체라고 불릴지라도 역사가 지나면 흑인차별, 인종차별에 맞섰던 이들처럼 장애인 차별에 맞섰다고 평가받지 않을까요.”

경향신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11월 13일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강연을 마친 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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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존재, 안 보이는 곳으로 보낸 사회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탈시설 시범사업에 59억8200만원만 편성한 반면 장애인거주시설에는 112배 큰 6695억원을 편성했다. 전장연은 이 예산안을 ‘수용시설 감금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예산 23억원도 전액 삭감해 활동지원가 187명이 전원 해고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폐지하고, 거주시설연계사업을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최중증 장애인 노동자 400명, 전담인력 105명 등 505명을 해고했다.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은 2020년 서울시가 노동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최중증·탈시설 장애인에게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했다.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은 이 사업을 통해 장애인 권익옹호 및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등의 활동을 해왔다.

정부와 서울시의 움직임은 장애인의 탈시설을 권고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된다. 2008년 한국도 이 협약에 비준해 보고서를 내는데 한국 정부가 지난해 제출한 2·3차 병합보고서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산을 강화하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자립하려면 일자리와 이들 곁에서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지원가가 있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유엔의 권고를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13만명의 중증·발달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예산을 깎았습니다.”

2005년부터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을 만들어 활동하는 김정하 상임활동가 역시 이날 강연에서 탈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모두 늙고 아프고 연약해지고, 그때가 되면 누군가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지원을 받길 원할까요. 제 어머니는 치매가 심해져서 생활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설로 가게 되는 걸 가장 두렵다고 해요. 우리 할머니·어머니의 이야기이고, 곧 올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 한명이 담당하는 노인이 15명 이상입니다. 노인이 되면 밤에 소변을 자주 보는데, 밤에 미안해서 혼자 가려다가 낙성하면 골반이 부러지고, 누워있게 되면서 욕창이 생기죠. 의사 지시로 신체 구속을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일입니다. 한국사회 돌봄의 미래이죠. 이렇게 가면 정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가 있다고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시설로 가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모두를 위한 탈시설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향신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11월 13일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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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활동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다수의 사회복지시설에서 인권 침해 사례를 접하게 됐다. 정신요양시설에 있는 이들의 58.3%가 타인에게 노출된 상태로 목욕을 하고 95.2%가 개인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는 등 외부소통권이 제한된 비인권적 환경에서 거주한다. 특히 정신의료기관이 아닌 정신요양시설까지 본인 동의 없는 입소가 가능하다. 민간이송 차량에서 손발 묶기, 목줄 등 폭력적인 연행이 이뤄지고, 본인 동의로 입원해도 퇴원을 할 때는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퇴원이 불가능하다. 정신·행동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기간은 200.4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는 나라 중 가장 길다. 2위 스페인에 비해 140일 많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데 아동시설 입소율은 높다. 전국 240개 아동양육시설에 1만명 넘게 산다.

김 활동가는 시설이 인권침해의 온상이었음에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로 ‘침묵의 카르텔’을 들었다. “정부는 거액의 예산을 들이거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서도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외면한 채 침묵했고, 일반 국민은 손쉽게 별다른 부담 없이 장애인을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시설운영자는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해왔다는 동정론에 기대며 보호와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장애인의 사회적 격리를 당연시하고, 이들의 삶의 존엄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장애인 가족은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가 없는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부양 부담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집단으로 시설에 거주하게 하는 방식은 통제에 용이할 뿐 개별성을 존중받기 어려운 구조다. 행정조직이나 가족에 의한 비자의적 입소가 많다는 점에서 선택권을 침해하고,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래서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학대받는 아동이든 해외에선 시설에 입소해 살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 중이다. 한국에선 그러나 탈시설이 지지부진하다. 중앙정부 6695억원과 지방정부 예산을 합하면 시설에 쓰는 예산이 1조원이 넘지만, 탈시설 사업 관련 예산은 8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김 활동가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국가적 돌봄 체계를 만드는 고민을 서두를 때라고 말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으로 탈시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사회기반의 주거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유엔의 탈시설 권고안에 근거해 정부의 탈시설국가계획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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