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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빈대 공포 확산

이번엔 빈대 떠넘긴다…또 터진 교사·행정실 갈등, 누가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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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연합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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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이달 초 빈대 방역을 지시하는 공문을 일선 교육청에 보냈다. 지난달부터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이어진 데 따른 조치였다. 공문에는 학교 기숙사와 숙직실 등을 중심으로 빈대 점검과 예방교육 및 치료 등의 지침이 담겼다. 교육부 관계자는 “질병관리청이 빈대의 특성과 방제 방법 등의 내용을 정리한 빈대 정보집을 함께 보냈다”며 “관련 자료를 참고해 앞으로 빈대가 확산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를 당부한다는 내용을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각 시·도교육청을 거쳐 일선 학교로 전달된 교육부의 공문은 곧바로 반발을 불러왔다. 빈대 관련 업무를 학교의 누가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보건교사와 행정실 교육공무원 간에는 사실상 ‘업무 떠넘기기’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경기도 양평군의 한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 중인 이모씨는 “공문을 받은 보건교사가 담당자 재지정 요청을 했다. 아직까지 빈대 관련 업무를 맡을 사람을 정하지 못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달만 전국 학교·기숙사 3곳서 빈대 출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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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대구 중구 한 숙박업소에서 대구시 위생정책과, 중구 위생과 직원들이 빈대 확산 방지를 위한 공중위생업소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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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합동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소재 학교와 기숙사에서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 건수는 총 11건이다. 이 중 3곳에선 빈대가 실제로 발견됐다. 빈대가 학교에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할 시급한 상황이지만, 정작 교사와 행정실 교육공무원의 업무 분장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다시 촉발되는 모양새다.

교원단체와 노조 간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9일 한국노총 산하 교육청노동조합연맹은 “일부 학교에서 빈대예방 및 관리업무와 공문을 행정실로 떠넘기고 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며 “질병 관리에 따른 보건 업무를 행정실로 떠넘기는 행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모든 교육행정공무원은 빈대와 전혀 무관함을 선언한다”고 했다. 지난 13일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와 보건교사회는 공동 대응을 통해 “일부 지역의 일반직 노조에서 빈대 관련 방역과 소독까지 교사에게 전가하고 이를 협박성 공문으로 만들어 일선 학교에 뿌려 학교 현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고 맞불을 놨다. 이들은 ‘빈대 방역 및 점검 관련 모든 업무 보건교사 전가 반대’라는 제목의 긴급 요구서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공문 내려오자 터져 나온 반발 “우리 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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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한 교육지원청이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학교 내 빈대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 계획 수립' 공문의 일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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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와 교육행정공무원은 빈대 관련 업무의 세부적인 사항을 두고 입장차가 크다.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지시한 빈대 관련 업무에는 기숙사 등 빈대 서식 취약장소에 대한 자체점검과 방제·소독 실시, 빈대 피해 현황 조사와 예방 교육 등이 포함돼있다. 강류교 보건교사회 회장은 “빈대에 물린 학생의 건강 관리와 빈대 예방 교육은 당연히 보건교사의 업무이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학교 시설을 점검하고 외부 방역 업체와 계약을 맺는 등 빈대 방제 활동은 행정실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강동인 경기도교육청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시설 점검의 실무를 행정실이 맡더라도 보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보건교사가 빈대 업무를 총괄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업무 지시를 내려야 한다”며 “소독 약품의 독성 문제 판단 등 민감한 문제가 있음에도 시설 방역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행정실이 떠안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해묵은 교사-행정공무원 갈등에 “학교장 역할 중요”



이러한 대립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 방역 업무를 둘러싼 갈등과 비슷한 양상이다. 당시에도 코로나19 방역 업무 지시와 방역 인력의 채용업무 등을 두고 교원단체와 교육공무원노조가 맞불 기자회견을 열며 갈등이 빚어졌다.

한국교총이 매년 발표하는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건수 중 가장 많은 유형은 ‘학부모에 의한 피해’였지만,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0년과 2021년에는 2년 연속 ‘교직원에 의한 피해’가 1위였다. 교총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 업무를 둘러싸고 혼란과 갈등을 빚은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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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빈대가 출몰하는 가운데 배재대가 대학 국제언어생활관 내 학생 거주 공간과 샤워실, 화장실, 인터넷 카페 등에 대해 예방 소독과 방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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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갈등의 해법은 뭘까. 일각에선 섬세한 업무 분장과 인력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교육 행정의 ‘디테일의 악마’를 지적하지만, 학교에서의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코로나19 방역 업무를 둘러싼 갈등을 연구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은 보건교사와 행정실 책임자, 교장, 교육청 관계자 등 11명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구의 결론은 “행정실과 보건실의 업무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단순히 업무분장을 새롭게 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연구책임자였던 임선일 박사(現 화성시인재육성재단 대표이사)는 “과거 코로나19 때도 그렇고 현재 빈대 문제도 모든 학교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다”며 “그 차이는 학교장이 모호한 업무 분장을 얼마나 잘 조율하고 상호 간의 협조를 구하면서 갈등에 대처해나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교육부나 교육청이 모든 업무 분장을 획일적으로 정해 지침을 내릴 수는 없다. 일선 학교에서 학교장과 교감, 행정실장과 보건교사가 한자리에 모여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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