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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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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 충돌이 핵전쟁 부를 수도... 남북대화 힘들면 자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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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정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이 16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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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이래 최대 위기”라는 진단도 내놓는다. ‘이러다가 전쟁 터지는 것 아닌가’라는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남북한 지도자들은 ‘치킨 게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하지도 않겠다’는 식의 말폭탄과 무력시위를 주고받고 있다. 한편 1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서 양안 관계 및 미중관계, 그리고 동아시아 정세에 미칠 영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거대한 럭비공’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와 국제문제 전문가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남북한이 계획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우발적 충돌이 발생해 확전과 심지어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가장 큰 우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당국의 자제와 윤석열 정부의 예방외교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는 문 교수와의 인터뷰는 1월 16일 김대중 도서관에 있는 연세대 통일연구원에서 진행되었다.



-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었다. 양안관계와 미중관계, 그리고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현상이 유지될 거라고 본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라이칭더 부총통이 당선되자마자 “미국 정부는 대만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걸 분명히 얘기했고,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트럼프도 “난 대만 방어 약속 안 해”라고 못 박았다. 이는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부추겨 양안 위기를 조장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라이칭더 차기 총통도 그동안 총통 선거 국면에서 양안 문제를 100% 활용을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오히려 상황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중관계 역시 작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이후 비교적 안정화되고 있고, 최근에 와서는 양측 군부 지도자들 사이에 소통 채널이 상당히 활성화가 되고 있기 때문에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현상 유지를 깨는 군사적 충돌 같은 게 있을 거라고 보진 않는다.”



- 대만 총통 선거가 한중관계에도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한중관계의 관리와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중관계에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이 한미동맹을 강화하겠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이다. 이러한 발언이 이행되면 중국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 변수가 바로 남북관계이다. 지금처럼 경색되고 악화되는 상황에서 북한 위협을 다루기 위해 한미동맹과 한미일 3국 공조를 강화하면, 중국은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 새해부터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우선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에서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북한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남북관계를 민족 관계가 아닌 국가 관계로 정상화하겠다는 것 아닐까. 여기서 역설적인 것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희망 사항이었는데 이를 북이 먼저 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일부를 없애고 외교부에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걸 김정은이 과감하게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북이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틀에서 재미를 본 게 없고 오히려 남의 흡수통일 기회만 높여 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도 이러한 현실 인식의 반영이다. 일종의 반사적 행태로 내부적 응집력을 고취하려 한 것 같다.”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1월 2일 담화에서 “문재인,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면서 만났을 때 한 얘기와 돌아서서 한 행동의 불일치를 비난했는데, 문재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를 지낸 분으로서 이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판문점과 평양에서 만나 두 정상이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을 채택하고 능라도 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군중들 앞에서 비핵화와 평화의 약속을 했는데 남한이 이행한 게 하나도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철도·도로 연결 등 합의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고, 심지어 타미플루도 지원도 무산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앞서가면 한미공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게다가 북측이 남측 제안을 받아들여 ‘싱가포르 선언을 미국이 성실하게 이행하면 영변 핵시설을 완전하고도 영구적으로 폐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2018년 9월 평양선언에 포함한 것도 획기적 결단이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를 구체화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와 설득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느라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을 잃게 된 것 아닌가 한다. 지금 회고해 보면 분명히 패착이었다.”



- 최근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저명한 전문가들인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최근 ‘북한이 전쟁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계획에 의한, 소위 한국전쟁 식의 대규모 전쟁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건데, 사실 김정은의 얘기는 조건절이다. ‘전쟁을 해야 한다면 전쟁을 피하지 않고 남한에 핵을 포함한 모든 무기를 이용해서 남쪽을 평정하고 초토화하고 공화국의 영역에 포함시키겠다’는 식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적어도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벌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근데 윤석열 정부가 얘기하는 것도 똑같다. ‘북한이 도발하면, 즉시·강하게·끝까지 응장하고 북한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시 조건절이다. 다시 말해, 양측 모두 계획에 의한 선제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 우발적 충돌과 확전 위험은 어떻게 보는가?



“그게 걱정이다.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 전면전, 심지어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정은은 최근 NLL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영해에 단 0.001mm라도 들어오면 전쟁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럴수록 우리 정부의 NLL 사수 의지는 더욱 강해진다. 설상가상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람이 불 때, 대북 전단 살포까지 시작되면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충돌이 발생하면 북한의 선언적 위협과 윤석열 정부의 공세적인 교전 수칙이 맞물리면서 확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북한보다 훨씬 화력이 센 한미연합전력이 공동으로 대응할 경우 북한은 체제 및 국가 존속에 위협된다고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이 핵무력의 제2의 임무인 전술핵 사용을 고려하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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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이 16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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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관할하는 유엔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확전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남북 양측이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하면서 무력 사용을 짧은 시간에 급격히 증강하게 되면 미국이 확전을 막기가 상당히 힘들어질 수 있다. 게다가 과거에는 우발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남북한의 소통 채널이 있어 확전 방지에 기여했지만, 현재에는 그러한 소통 채널마저 없어졌다. 오판·오해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군사적 충돌 위험성도 높아지는 건 명약관화하다. 민간 외교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고, 미국, 중국이 나서서 개입·중재해줄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 한미가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보다는 군비통제를 목표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한 주장의 논리는 ‘북한이 지금 핵무기 보유했다는 건 현실 아니냐. 그거 인정하고 시작하자. 그런데 완전한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이자 목표로 내세우면 북한이 호응할 리 없지 않느냐. 그러니 지금 당장은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북한이 더 많은 핵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전략적 목표가 돼야 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헤커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북의 핵무기 증강을 멈추고,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폐기하는 접근’이 실용주의적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미 수교를 선제적 카드로 이용하여 핵 군비통제와 핵 군축을 구체화하는 것이 위기 확산을 막는 현실적 접근이라는 이들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따른 행동과 조치를 보여야 할 것이다.”



-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우선 트럼프는 자신의 협상력을 강하게 믿는 사람이다. 지금도 김정은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볼 때, 그가 당선되면 북미 정상간 대화가 바로 시작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윤석열 정부는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리고 한미동맹에 주는 타격도 클 것이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동맹’은 안 하겠다는 게 트럼프 정책이니 방위비 분담 문제도 다시 대두될 것이다. 또 트럼프는 한반도 전쟁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한미 연합훈련이나 미국의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에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명시한 워싱턴 선언 및 한미일 3국 공조에도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동맹에 다걸기를 해온 윤석열 정부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이다.”



- 윤석열 정부가 이거 하나만은 꼭 명심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기보다는 전쟁을 피하는 외교안보 정책을 폈으면 한다. 대통령과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지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민주주의에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와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북이 서로 자제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가 당장 어려우면 자제부터 하는 게 현명하다. 남북 간 군사훈련의 하향조정이나 잠정 중단, 남북 통신선 복원, 남북·북미 대화 채널 재가동 등 신뢰구축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9·19 남북군사합의도 복원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예방 외교를 구축해나가는 시작점이지 않을까 싶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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