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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나는 흔한 풍경이다”… 청년들의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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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시집

조선일보

/창비


웃긴 게 뭔지 아세요

한재범 시집 | 114쪽 | 창비 | 1만1000원

‘웃긴 게 뭔지 아세요’는 열아홉 살 나이에 데뷔하며 화제를 모았던 한재범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토록 젊은 재능의 등장에서 어떤 특별한 매력과 신선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례적인 것은 신인에게 흔히 기대되는 파격과 일탈의 야망 같은 것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권태로운 어조의 자기에 대한 단언이다. ‘나는 흔한 풍경이다’(‘너무 많은 나무’)

젊은 시인이 이처럼 자기 자신의 상투성을 전면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시집을 관통하는 독특한 세대론적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난 해에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대 내가 그렇게 흔한가 여기 나랑 동갑인 사람이 많대 우린 서로 이름으로 부른 적 없지 저기요 (중략) 우리는 자주 해프닝 같고 때로 멸칭 같아 이 자리가 왜 남겨졌는지 알 수 없는데’(‘밀레니엄 베이비’)

조선일보

강동호 문학평론가


2000년생 시인의 이러한 자조적 토로는 기성세대에 의한 각종 청년 세대 담론의 부당함을 꼬집으면서, 세대론의 홍수 속에서 점점 진부해져만 가는 ‘나’의 정체성을 겨냥하는 중이다. ‘나는 가끔 내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의 바나나 줄기에선 바나나가 여럿 자라니까요 그의 이름도 알지 못했지만 우리에게서 같은 냄새가 났다’(‘웃긴 게 뭔지 아세요’) 이처럼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의 어려움을 세대론적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시선 속에서, 새로운 시적 모험의 가능성이 재발견되는 중이다. ‘웃긴 게 뭔지 아세요’는 자기 세대의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기 위한, 한 청년 시인의 냉철한 시적 분투의 현장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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