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 5억 넘는 고령층, 80%는 부동산
12일 통계청의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 세부 자료를 살펴보면, 60세 이상 가구주의 전체 평균 자산(5억4836만원) 중 부동산(4억3056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8.52%였다. 이 중 직접 거주하지 않는 주택의 비중(1억8391만원ㆍ33.54%)도 상당했다. 반면 금융자산은 약 17.98%(9862만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전ㆍ월세 보증금을 뺀 순수 저축액의 비중은 14.72%(8072만원)로 더 떨어진다. 부동산 평가액이 늘면서 전체 자산도 불어났지만, 이를 제외한 현금 흐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차준홍 기자 |
실질적 은퇴 세대인 65세 이상 가구주로 한정해서 보면 이들의 ‘부동산 편식’은 더 심해진다. 이들 전체 자산(5억714만원) 중 부동산 비중(4억1242만원)은 약 81.32%에 달한다. 반면 금융자산(8080만원)은 15.93%에 불과했다.
━
한 달 140만원 빚 갚는 청년, 80%가 부동산
반면, 지난해 30대 이하 가구주의 전체 자산(3억3615만원)에서 부동산(1억8001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53.55%에 불과했다. 금융자산은 39.71%(1억3347만원)로 60세 이상보다 절대 액수나 비중에서 모두 크게 앞섰다.
그렇다고 청년층의 자금 여력이 고령층보다 많다고 보기 힘들다. 벌이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 빚이나 거주 비용에 다시 쓰고 있어서다. 30대 이하의 평균 부채는 9937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약 29.5%를 차지했다. 이중 주택 관련 부채(부동산 담보대출, 거주 주택담보 대출, 임대보증금)는 79.8%(7934만원)로 절대적이었다. 2022년 기준 1년 원리금 상환액만 1671만원인데, 한 달로 계산하면 약 139만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30대 이하의 1년 평균 경상소득(6590만원)의 25% 수준이다. 그나마 보유한 금융자산 절반 가까이도 거주지 전ㆍ월세 보증금(7275만원)으로 쓰고 있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
부동산 빚에 청년층 지갑이 닫히는 현상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한 부동산 가격 폭등기에 특히 심화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34세 이하 가구주의 소득대비 금융부채 배율은 지난 2016년에는 다른 연령 대비 가장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부채가 급격히 늘기 시작해, 지난 2022년에는 이 배율이 1.49를 기록하며 모든 연령 중 최고를 기록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허모(36)씨도 높은 부동산 부채에 출산까지 미뤘다. 허씨는 지난 2021년 결혼하면서 4억원 가까운 전세 대출로 서울에 신혼집을 얻었다. 한 달 원리금만 200만원으로 허씨 월급의 절반가량 됐다. 허씨는 “맞벌이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애까지 낳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출산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70대가 50대에 대물림…‘노노(老老) 상속’ 심화
하지만 고령층으로 한 번 쏠린 자산이 청년층으로 다시 이전되기는 어렵다. 이제는 소득만으로 막대한 자산을 마련하기 어렵고, 이미 자산을 축적한 고령층이 이를 세금 문제로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은퇴세대가 축적한 자산을 그냥 보유만 하고 있다가 사망할 즈음 이를 늙은 자식에게 다시 물려주는 이른바 ‘노노(老老) 대물림’도 심화하고 있다.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에 따르면 올해 집합건물 증여인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세대는 70세 이상(37%)으로 2020년 60대(26.7%)에서 연령이 더 올라갔다. 반면 집합건물을 물려받은 세대는 중에서는 50대(26.6%)가 가장 많았다. 또 국세청은 지난 2021년 재산을 물려준 사망자 가운데 나이가 80세가 넘는 사람(6427명)이 2007년(940명)의 7배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
고령 자산 잠김에 성장 둔화…이전 방안 찾아야
이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다. 고령층은 소비와 투자를 안하고, 반대로 부동산 자산이 없는 청년층은 막대한 거주 비용을 마련하고자 소득 상당 부분을 빚에 쓰고 있다. 청년층에 적절한 자산 축적의 기회를 제공해 ‘부의 추월차선’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여·상속세 등 과세 완화를 통해 세대 간 자산 이전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당성 없는 ‘부의 대물림’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초고액 자산이 아닌 필수 생활비에 한해서라도 세대 간 자산 이전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생활비라도 줘야”…증여·상속세 개편 필요성
은퇴 후 제주서 생활하는 홍성자(74)씨는 제주도 300평 달하는 땅을 인근 주민에게 소작을 줬다. 홍씨는 “내가 쓸 수 없는 땅이라 자식에게 물려줄까도 했지만, 너무 많은 세금을 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홍수형(66세)씨도 “옛날처럼 월세로 시작해 집 살 수 있는 거 아니지 않냐”면서 “자식에게 막대한 부를 대물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필수 생활비라도 지원할 방법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도 혼인 및 출산한 자녀에게 최대 1억원까지 증여세를 추가로 공제하는 공제 제도를 최근 만들었다. 하지만 기본 증여세 공제액은 자녀 기준 10년간 최대 5000만원으로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공제액이 수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보다 상황에 따라서는 증여가 세금을 더 낼 수도 있어 현재 제도가 오히려 ‘노노(老老) 상속’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권성정 하나은행 부장은 “은퇴한 고객들에게 일단 보유 부동산을 판 뒤 이를 생활비와 증여 등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하지만, 세금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좀 더 효과적으로 자산 이전 방법을 열어주면, 이에 응할 고객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는 정당성이 없는 부의 축적이 많아 이를 대물림하는 상속·증여세 완화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면서 “다만 앞으로 경제 성장을 지속하려면, 가장 소득이 높고 왕성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30·40대에 어느 정도 자산을 이전해야 하므로, 상속·증여세 개편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