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0 (목)

연극 무대 선 전도연 “대사 한 줄 빼먹었지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와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 중인 배우 전도연. 엘지아트센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대 위의 배우는 어디 숨을 곳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실수해도 다시 찍으면 그만이지만, 연극에선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전도연(51)에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이먼 스톤 연출이 실수하라고 했어요. 상대 배우를 불안하게, 연기 하기 불편하게 하라고요.” 전도연은 “배우가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움이 연출 의도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 원작 ‘벚꽃동산’에 단일 캐스트로 출연(7월7일까지) 중인 그가 11일 서울 강서구 엘지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전도연도 대사를 빼먹을 때가 있을까. “그렇게 크게 빼먹지는 않았고요, 한 줄 정도 빼먹었어요.” 전도연은 “모든 회차 공연에서 다 빼먹는 건 아니다”며 웃었다. “한번은 박해수 씨가 대사를 통으로 빼먹는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나는 어떡하지’ 하다가 제 대사를 하긴 했어요. 마음이 허둥지둥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무대 경험 많은 해수씨는 놓친 대사들을 바로 해내더라고요.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첫 공연 직전까지도 전도연은 속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이 감당 안 되는 거예요. 도망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죠. 내가 왜 스스로 발등을 찍었나 했지요.” 그는 “지금은 실수든, 무엇이든 동료 배우들과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모든 배우가 저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실수해도 우리가 있으니까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요. 든든하고 뭉클했어요.”



한겨레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각색한 연극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 원작과 다른 작품이라 할 정도로 배경과 이야기를 바꿨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감 넘쳤다. “전도연, 연기 잘한다는 건 모두 아는 거고요.” (웃음) 전도연은 “그렇지만 그걸 뽐내거나 보이고 싶어서 연기하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뭘 잘했다’가 아니라 내가 느낀 만큼 관객들이 받아들이도록 표현하는 방법을 더 고민하게 된다”고 말한 그는 “‘나 연기 좀 잘하잖아’라고 보여줄 생각이었다면 무대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엔 연극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영화든, 드라마든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 연극에선 저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는 “원작을 재미없게 읽어서 이번에도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사이먼 스톤의 연출과 무대가 궁금해져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무대가 온통 하얀색인데 좀 특이했어요. 잿가루가 떨어져 뭔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불타는 집이더라고요. 이런 모던한 표현 방식이 좋았어요.”



한겨레

연극 ‘벚꽃동산’에서 연기하는 배우 전도연(왼쪽)과 박해수. 엘지아트센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주일 동안 진행한 워크숍은 배우들의 캐릭터가 작품에 녹아드는 과정이었다. 스톤 연출은 배우의 사소하고 사적인 얘기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스톤은 ‘대본 안에 배우들 모습이 모두 들어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배우들이 불안정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를 바란 것 같더군요.” 전도연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작업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배우를 자극하고 성장하게 한다”고 했다.



체호프는 원래 이 작품에 ‘희극’이란 주석을 달았다. 스톤의 연출도 희극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객석에서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배우들이 빚어내는 순발력이 이 작품의 희극성을 더해준다. 하지만 원작과는 크게 다르다. 배경과 공간, 이야기 전개뿐만 아니라 인물 캐릭터와 메시지도 크게 차이가 난다. 마지막 장면이 이를 특히 잘 드러낸다.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아무것도….” 원작은 나이 든 집사의 인생 허무에 대한 독백으로 문을 닫는다. 스톤의 이번 작품은 메가폰을 잡은 박해수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진군을 독려하며 마무리된다. “전부 다 부숴버려. 새로운 시대가 올 거야. 이제 시작이야.” 전도연도 “원작을 읽으면서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남았는데, 이번엔 인물 자체가 달랐다”며 ”벚꽃동산이란 이름 아래 다른 작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전도연에게 새 시대란 뭘까. “스톤 연출에게 새로운 시대가 뭐냐고 물었는데, 답을 주지 않았어요.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떤 건지는 각자 다르겠죠. 그건 관객 몫이 아닐까요.”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