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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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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시진핑 이어 푸틴… 베트남 “어서 와, 뭘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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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캄보디아와 친미 필리핀 사이… 절묘한 ‘지정학적 꽃놀이패’

조선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20일 새벽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푸틴은 전날 북한을 국빈 방문하고 바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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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이어 두 번째 방문지 베트남에 도착했다. 20일 새벽 2시 베트남 수도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전용기에서 푸틴이 내려오자 쩐홍하 부총리, 레호아이쭝 베트남 공산당 대외관계위원장 등이 맞았다. 똑같이 꼭두새벽에 도착했지만 ‘최고 존엄’ 김정은이 직접 영접한 북한과 대조됐다.

특히 지난해 9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이번 푸틴까지 아홉 달 새 미·중·러 정상들이 잇따라 베트남을 찾자 열강의 협력 파트너로 몸값이 오른 베트남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은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 또럼 국가주석, 팜민찐 총리 등 지도부를 만나 201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된 양국의 협력 관계도 재확인했다. 무역·에너지·과학기술·교육·의료 등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합의서에 서명하고, 러시아 기술로 베트남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도 심층 논의했다. CNN은 푸틴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방의 제재 속에서 우호 국가들의 지원을 모색하고,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을 찾아 양국 간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인류 미래 공동체’로 격상하고 각 분야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이보다 석 달 앞선 9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으로 날아가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이처럼 베트남을 향해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열강들이 앞다퉈 손을 내미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지정학적 특성을 극대화한 베트남이 중립·실리 외교로 글로벌 외교전의 ‘꽃놀이패’를 쥐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베트남은 자국의 외교 노선을 ‘대나무 외교’라고 내세운다. 줄기는 단단하되 잎은 부드러운 대나무처럼 ‘당이 이끄는 공산주의 국가’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실리를 위해서는 서방국가들과 협력도 주저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어느 나라와도 척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단단한 대나무 줄기에 해당한다. 러시아는 구(舊)소련 시절 베트남의 대(對)프랑스 독립 전쟁은 물론, 1960~1970년대 미국과 전쟁(베트남전)도 적극 지원하면서 연대해왔다. BBC는 “베트남은 특히 1978년 캄보디아 침공으로 중국과 서방 모두로부터 제재를 받고 고립돼 소련의 지원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며 “베트남은 러시아와 관계를 ‘의리와 감사로 가득 찬 관계’라고 묘사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인 1979년부터 2002년까지 베트남 까마우만에 해군 기지를 운영하면서, 베트남을 자국의 ‘동남아 전진 기지’로 활용했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친러 진영으로 기운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과 미국 관계는 불과 반세기 만에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부드러운 댓잎 같은 모습을 보였다. 베트남전 종전 20년 뒤인 1995년 관계를 정상화한 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모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찾았다. 2000년에는 양국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2011년에는 베트남전 종전 후 처음으로 미 해군 군함이 다낭에 기항하는 등 경제·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협력 폭을 넓히고 있다.

베트남은 같은 공산국가지만 영토·영해 분쟁으로 껄끄러운 사이기도 한 중국과의 관계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2022년 시진핑의 3연임 방침이 사실상 굳어지고 난 뒤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외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환대받으며 우의를 과시했다.

베트남은 외교에서 철저한 대외 불간섭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국제사회의 규탄 대열에 동참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신장·위구르와 홍콩 등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인 미얀마 군부의 인권 탄압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을 자제해왔다. 반면 자국의 공산당 독재와 인권 문제에 대한 서방의 비판에 대해서도 ‘내정 문제’라는 이유로 일축해왔다.

국제사회의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면서 베트남의 ‘꽃놀이패’가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 친중 성향이 가장 강한 캄보디아와 서쪽으로 접경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국과 격렬한 해양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친미 국가 필리핀과 남중국해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태평양에서 패권을 다투는 미국·중국, 국제 제재로 돈줄이 막혀있는 러시아와의 선택적 협력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베트남은 서방과 권위주의 국가들의 끈질긴 구애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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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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