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에게 인계할 의무까지는 없어"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만취 시민을 상대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손영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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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술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귀를 물어요!"
2022년 12월 17일. 전국적으로 한파·대설 경보가 발효된 날. 그 추웠던 날 밤 충남 태안군 한 지구대에 이런 112신고가 떨어졌다. 경찰관이 출동해 보니, 태안에서 열리는 친구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서 귀향한 A씨가 초등학교 동창들과 술을 먹다가 취기에 못 이겨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출동 경찰관은 안 가겠다고 버티는 A씨를 일단 데리고 나와 "모텔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A씨가 "근처에 어머니가 살고 계신다"고 얘기해, 경찰관은 그곳까지 A씨를 데리고 갔다. 머지않아 한 논길에 다다르자, A씨는 "내리겠다"며 순찰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A씨가 말한 위치에선 걸어서 5분 거리였으나, 주변 풍경이 그가 묘사한 모친 집과 유사했다. 경찰관은 5분쯤 지나 A씨가 내렸던 장소에 그대로 서 있는 걸 봤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복귀했다.
이틀 뒤. A씨는 순찰차에서 내렸던 자리 근처 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음주상태에서 저체온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 A씨 유족은 끝까지 보호하지 않은 경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보호가 필요한 주취자를 보호자에게 인계하지 않아 사람이 죽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박준민)는 1년간 심리 끝에 지난달 25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A씨는 만취 상태'라고 적힌 112신고사건 처리내역서를 근거로, 경찰이 술에 취한 A씨의 이상행동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A씨 유족 측 주장을 물리쳤다. 원래 경찰이 출동한 목적은 '보호'가 아니라 '폭행 사건 처리'였다는 것이다. 분리조치 일환으로 A씨가 원하는 장소에 내려준 것이었고, A씨가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의 인사불성 상태는 아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하차 당시가 어둡기는 했지만 주위에 특별한 위험요소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가 하차장소에 계속 서 있는 모습을 경찰관들이 봤다고 하더라도, 그를 보호자에게 인계할 의무가 경찰관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비슷한 사건에서, 지난해 서울의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취객을 집 앞 계단에 놓고 갔다가 사망케 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귀가를 거부하는 취객을 무작정 이송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자, 경찰청은 '주취자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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