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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부끄러운 제헌절… 국회 개원식도 못한 채 대치 ‘반쪽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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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1시간 전 野 규탄 시위한 與

경축식 與 108명 중 10여명 참석

개원식 제헌절까지 못 연 건 처음

22대, 개헌 이래 최장 지각 ‘오명’

우 의장 “여야 극한 대립 멈춰라”

野 방송4법 단독입법 강행 ‘제동’

與엔 방송 이사진 선임 중단 요청

“협의체 구성해 시간 갖고 협의를”

헌정 사상 최초의 야당 단독 개원으로 ‘반쪽’ 출범한 22대 국회가 개원식도 못 한 채 제76주년 제헌절을 맞았다. 1987년 개헌 이후 제헌절까지 개원식을 열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섰던 21대 때보다 ‘더 매운 맛’이 될 것이라던 22대 국회가 예상대로 헌정사에 오점을 거듭 남기고 있는 셈이다. 원 구성과 채상병 특검법 처리 등으로 강대강 대치를 이어온 여야는 22대 임기 시작 두 달이 다 돼 가도록 협치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방송4법 등을 둘러싸고 또 한 번 혈전을 예고했다.

1948년 7월17일 이뤄진 대한민국 헌법 제정을 기리는 날인 17일 여야는 헌법정신 파괴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렸다.

세계일보

“거야 입법 독주”… 경축식 전 피켓 든 與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앞줄 가운데)와 당 소속 의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민주당의 위헌·위법 탄핵선동 규탄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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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제헌절 경축식 1시간 전 행사 준비가 한창이던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171석 ‘거야’ 민주당의 각종 특검·탄핵 추진을 강하게 비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거대 야당의 입법 횡포와 독주로 우리 헌법정신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헌법 위에 군림하며 입법 폭력을 자행하는 민주당의 의회 독재에 결연히 맞서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과 시행령 통치야말로 “헌법정신 파괴 시도”라고 맞섰다.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 훼손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과 함께 주권재민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경축식도 사실상 반쪽으로 치러졌다. 국민의힘이 추 원내대표 외 다른 의원들의 참석은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면서 여당 의원 108명 가운데 10명 안팎만 참석했다. 행사에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 등 5부 요인,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추 원내대표, 민주당 박 대표 직무대행,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환담 자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최근 정말 부끄러운 것 중의 하나는 너무 갈등이 심해서 개원식도 못 하고 제헌절을 맞이한다”고 말했다.

22대 국회는 임기 시작 49일째인 이날까지 개원식을 열지 못해 역대 최장 늑장 개원식 기록을 맡아뒀다. 지금까지는 제헌절 하루 전인 2020년 7월16일에야 개원식을 연 21대 국회가 기록을 갖고 있었다.

세계일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76주년 제헌절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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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식을 포기한 채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의원 선서만 하는 약식 개원식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통위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뿐 아니라 야당이 각 상임위에서 일정과 증인·참고인 명단 등을 단독 의결한 윤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24∼25일) 등 여야 앞에 놓인 난관이 많은 만큼 관례적으로 대통령이 참석해 축하연설을 하는 정식 개원식은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 의장이 우선적으로 방송4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을 풀기 위해 직접 나섰다. 당장 야당이 18·25일 본회의에서 방송4법 강행 처리를 예고하자 여당은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으로 맞불을 놓을 준비를 하던 터였다. 우 의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4법과 관련해 “극한 대립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 잠시 냉각기를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야당엔 △방송4법 입법 강행 중단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논의 중단을, 정부·여당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일정 중단 △방통위 ‘2인 체제’ 정상화를 요구했다. 우 의장은 방통위·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난맥상을 풀기 위한 범국민협의체 구성도 제안하며 “두 달 정도 시한을 두고 결론을 도출하자”고 말했다. 자연스레 방송4법 처리를 둘러싼 대치가 예상되던 18일 본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다만 여야가 우 의장 제안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단 야당은 정부·여당이 우 의장 제안 중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일정 중단’을 우선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전제조건은 의장이 말한 것처럼 이사진 선임을 안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방송4법을 일방 강행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추 원내대표는 과방위원 회의를 소집하고 우 의원 제안 수용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조지연 원내대변인은 “(원내지도부가) 과방위부터 시작해서 여러 의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태영·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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