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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약 안 듣는 '폐암'…3∙4세대 치료제가 희망될까[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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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60년 동안 담배를 피운 ㄱ씨(85)는 지난해 11월에 비(非)소세포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암은 양쪽에 있는 폐로 빠르게 퍼졌다. 그는 나이가 많고 콩팥 기능이 나빠 기존 항암제를 썼다가 부작용이 생길까 우려됐다. 그래서 의사, 가족과 의논해 처음(1차 치료)부터 면역항암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치료를 받은 후 두 달 새 그의 양쪽 폐에 있던 암은 절반이 넘게 사라졌다.

ㄱ씨 폐의 암이 줄어든 것은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라는 면역항암제 덕분이다. 면역항암제는 1세대 화학치료제(정상세포도 죽임)와 2세대 표적치료제(특정유전자의 돌연변이 공격)에 이어 나온 3세대 치료제다. 이 중 키트루다는 2011년에 출시돼 13년간 적응증(특정약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증상)을 넓혔다.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다국적 제약사인 암젠이 키트루다의 복제약에 대한 시험계획을 승인받는 등 복제약을 만들기 위한 업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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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3세대 치료제는 환자의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은 줄이고 반응을 보인 환자는 효과가 오래 나타나게 해 수명을 늘린다. 수술할 수 없거나 진행(전이)·재발해 치료 선택지가 적은 말기(3·4기) 암 환자들에게 쓰인다.

특히 폐암은 초기에 증상을 느끼기 어렵다 보니 많은 환자가 말기쯤 병원에 오는데 이들에게 자주 사용된다. 폐암이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잘 생겨 이를 줄이기 위해서도 활용되고 있다.

면역치료제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15년 지미 카터(99) 전 미국 대통령의 암 완치였다. 그는 뇌까지 피부암이 번졌으나 키트루다로 치료를 받은 뒤 암이 100% 없어졌다. 키트루다와 같은 3세대 치료제의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들은 201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키트루다 외에 옵디보(니볼루맙)와 티센트릭(아테졸리주맙)∙임핀지(더발루맙)∙여보이(이필리무맙)∙타그리소(오시머티닙)∙리브타요(세미플리맙)도 대표적인 면역항암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비소세포암은 전체 폐암의 84.1%를 차지하는데 이 암에 이들 치료제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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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면역치료제…타사 기술 진화시켜 조 단위 수출하기도

면역항암제는 최근 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거듭 진화 중이다.

우선 환자의 첫 번째 치료부터 면역치료제를 쓰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가령 수술할 수 없는 전이성 비소세포암은 2차 치료제로 먼저 허가됐으나 초기(1차) 치료에서도 효과를 입증해 허가 범위가 확대됐다.

면역치료제를 기존의 화학∙표적치료제와 쓰는 방법도 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면역항암제 개발사인 ST큐브는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회사의 신약 물질(넬마스토바트)과 타사 화학치료제를 함께 쓰는 방법을 시험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회사 측은 "넬마스토바트는 PD-L1 항체(면역 단백질) 치료에 불응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험한다"며 "이에 매출 선두(지난해 58억달러)인 키트루다에 버금 가는 시장을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키트루다는 면역세포의 안테나 격인 PD-L1에 암세포 대신 달라붙어 면역 기능을 지키는데, 자사의 항암치료제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유사한 효과가 나타나고 이를 각국의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으면 수익도 비슷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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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치료제는 대부분의 암을 대상으로 세계에서 수백건의 연구가 실시돼 왔다. 동아ST(DA-4507)와 오스코텍 등 여러 국내 기업도 연구에 뛰어든 지 오래다.

오스코텍은 2015년 7월 유한양행에 비소세포암 치료 기술을 15억원(총 계약금은 아님)에 팔았는데, 유한양행은 추가 시험으로 해당 물질을 진화시킨 뒤 2018년 11월 미국 얀센 바이오텍에 11억500만달러(약 1조5245억원)에 수출했다. 이 물질은 국내에서 '렉라자(레이저티닙)'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지난해 얀센은 회사의 폐암 표적치료제와 렉라자를 비소세포암 치료에 함께 쓰는 것을 연구하는 시험인 '마리포사'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에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돼 미 식품의약국(FDA)은 내달 렉라자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앞서 4일 유한양행이 일부 임원의 회사 주식 매입 사실을 공시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렉라자의 FDA 승인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국내 기업 HLB의 간암 신약이 FDA에서 보완 요구를 받아 높은 벽을 실감한 것과 대비된다.

FDA의 승인이 나올 경우, 앞으로 유한양행과 오스코텍의 매출은 급증할 수 있다. 오스코텍 측은 "유한양행이 얀센으로부터 기술이전 수익을 수령하면 일정률의 분배수입금을 받기로 했다"며 "수익은 관계 당국의 허가 등 개발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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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굶겨 죽이는 '대사항암제'…브릿지바이오, 2026년까지 54억 투자

이처럼 면역치료제를 화학∙표적항암제와 쓰는 방법은 당국의 승인 가능성을 높여 관련 기업들의 실적에 기여할 수 있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환자의 심장에 독성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쓰더라도 저항성 내성으로 인해 여러 돌연변이 중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에 변이(C797S)가 생길 수 있다.

이에 최근 업계에서는 '암만 굶겨 죽이는' 4세대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암세포가 의존하는 영양분의 공급로를 차단·억제해 성장을 막는 치료 방법이다. 비소세포암과 같은 난치성 암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가 되고 있다.

국내 기업 브릿지바이오는 2026년까지 대사성항암제를 개발하는 시험(1/2상)에 올해 하반기부터 54억원을 들일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2021년 11월에 발굴한 비소세포암 표적치료제 후보 물질이 C797S를 포함한 돌연변이에 대해 암 말기에서 뇌전이 억제 효과를 나타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C797S 돌연변이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는 해외 경쟁사로는 블랙다이아몬드 테라퓨틱스와 베타파마가 있다.

블랙다이아몬드 측은 "지난달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회의에서 관련 후보 물질의 시험 자료를 발표했다"며 "추가 추적 관찰을 통해 EGFR 돌연변이가 확인된 환자를 대상으로 이 물질의 추가 시험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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