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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유럽산이 韓시장 싹쓸이…日 안경∙렌즈 기업들, 국내서 수년째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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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국내 안경∙렌즈 시장은 외국계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 분야다. 외국계 중에서도 유럽계 업체들이 이 시장을 싹쓸이 하다시피 하면서 일본계 업체들마저 수년째 고전하고 있다. 기업별 실적 격차도 커지는 중이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실적이 공시된 3월 결산법인의 2023회계연도(2023년 4월 1일~2024년 3월 31일) 매출을 포함해, 국내에서 영업중인 안경∙렌즈 업체 가운데 지난해 매출(연결 기준)이 가장 많은 회사는 에실로코리아(2915억원)다. 이어 한국알콘(2054억원)과 한국존슨앤존슨비전(1565억원) 등의 순이다. 유럽계(에실로)∙미국계(알콘∙존슨앤존슨비전)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1~3위를 싹쓸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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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에실로코리아는 3년 연속 매출과 영업익이 늘며 다른 업체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 업체는 프랑스-이탈리아 합작사인 에실로룩소티카가 2002년 세운 국내 법인이다. 당시엔 코스피 상장사인 삼영무역이 대부분의 지분을 들고 있었지만, 이후 20여년간 에실로룩소티카가 최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고 삼영무역은 2대 주주다. 에실로룩소티카는 2017년 세계 시장 1∙2위였던 프랑스 에실로와 이탈리아 룩소티카가 합병하며 탄생했다.

이에 앞서 에실로코리아도 국내에서 과거 2위였던 업체와의 인수합병을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결합 회사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유효 경쟁자가 없다"며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인수합병엔 실패했지만 에실로코리아와 룩소티카코리아의 최대 주주인 기업들이 합병한 뒤부턴 양사 모두 에실로룩소티카라는 기업 집단에 묶이게 됐다.

에실로코리아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국내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와 선글라스에 들어가는 필름(FPR)을 공급하는 온빛 지분을 각각 16%, 100% 들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1988년 국내에서 설립돼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기 전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케미그라스의 지분을 한국 진출 1년 만인 2003년에 인수,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에실로코리아가 갖고 있는 케미그라스 지분 비율은 99.8%다.

에실로코리아의 연결 매출로 집계되는 케미그라스를 제외하면 룩소티카코리아(826억원)와 아이아이컴바인드(6083억원)의 작년 매출에 에실로코리아 매출을 더한 총합은 1조원에 달한다. 에실로코리아가 사실상 국내 시장을 석권한 셈이다.

일본 호야그룹의 자회사인 한국호야렌즈는 이에 맞대응하고 있지만 고전하는 양상이다. 3월 결산법인인 이 업체는 지난해 매출 437억원, 영업손실 26억원을 냈다. 세계 시장에서는 에실로룩소티카와 알콘∙존슨앤존슨비전에 이어 4위 업체(지난해 매출기준)지만, 한국 시장에선 콘택트렌즈 기업스타비젼∙인터로조(1218억원)∙쿠퍼비전코리아(646억원)∙바슈롬코리아(587억원), 국내 안경점 운영사 다비치안경체인(1271억원)보다 매출이 적어 겨우 10위 안에 들었다.

앞서 2019년 적자로 전환된 뒤 5년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 2021년 8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이후 이듬해(-16억원)와 지난해(-26억원)에 적자 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작년에 기록한 적자는 1999년부터 모든 연간 실적을 통틀어 역대 최대치이기도 하다.

호야렌즈가 한국에 처음 진출할 때 시장에선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등 반응이 차가웠다. 국내 시장에서 기반도 약하다 보니 대리점주들의 영업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누진다초점렌즈(하나의 렌즈에서 도수가 점진적으로 변해 근시와 원시를 동시에 교정하는 렌즈)의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지난 1999~2017년 18년 연속으로 매출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적자를 기록한 적은 없다.

그러나 다음해 매출 성장세가 꺾였고 2021년엔 대리점들의 자유로운 가격 경쟁을 막았다는 사실이 공정위에 적발돼, 소비자들이 그간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호야렌즈의 제품을 사야 했던 이유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듬해인 2022년 적자 규모는 전년 대비 2배가량 확대됐다. 이 때 생긴 틈을 누진다초점렌즈 사업도 영위하는 외국계 최상위 기업들이 파고들어 최근까지 격차가 벌어졌단 게 일각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이 반도체 정밀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이다 보니 대만의 콘텍트렌즈 제조사(페가비전∙세인트샤인)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최근 일본 시장 점유율이 80%가 넘는다"며 "한국에선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 본국에서는 대만 기업들이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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