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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뉴스AS] 법원 “삼성바이오, 회계 결과 정하고 사실과 상황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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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17년 2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으로 가기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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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금융당국을 상대로 냈던 행정소송 선고가 남긴 후폭풍이 거셉니다. 19일 공개된 220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삼성바이오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내용이 조목조목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지난 14일 삼성바이오가 금융감독원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시정 요구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삼성바이오의 승리였습니다. 재판부의 주문이 “증선위가 지난 2018년 삼성바이오에 내린 과징금 처분과 대표이사 해임 권고 등을 취소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삼성바이오의 온전한 승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재판부는 증선위가 제시한 징계 사유 중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기준 위반'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처분사유와 관련해 판결문 내 80쪽에 걸쳐 “삼성바이오가 재량권을 남용한 회계처리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앞서 증선위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가 2011년 미국의 제약기업 바이오젠과 합작으로 설립한 삼성에피스(이하 에피스) 회계 처리를 고의로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가 기업 가치를 크게 평가받기 위해 “바이오젠이 콜옵션(매수 선택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2015년 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공동지배기업으로 변경했는데, 이 과정이 회계부정이라는 점입니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가진 대주주였습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을 정당화하려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기업 가치를 크게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삼성바이오 재경팀의 주간업무현황 문서, 감사팀 회의 문서, 관계자들의 콜옵션 회계처리 회의 문서 등 내부 문건과 회계법인과 삼성바이오 간 전자우편 등 다수 증거를 인용하며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 부정 과정을 짚었습니다. 재판부는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는 이 사건 콜옵션의 부채 인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사건 콜옵션이 평가불능이라는 논리를 사용하려고 했다”며 “원칙 중심 회계기준 아래에서 경제적 실질에 기초해 합리적으로 회계처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잠식을 회피하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회계처리 방안을 모색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의 ‘콜옵션 평가 이슈’ 문서나 재경팀이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에 나온 세 가지 시나리오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삼성바이오,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하기로 먼저 결정…사후에 사실과 상황 모색”





판결문을 보면, 삼성바이오는 콜옵션이 부채로 인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콜옵션 평가불능’ 논리와 함께 바이오젠과의 합작투자계약 문구를 수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습니다. ‘평가불능’ 논리 등이 여의치 않자, 그 뒤 2015년 10월께부터는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에피스의 성공 가능성이 커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증대해 지배력의 변화가 생겼다는 논리입니다. 삼성바이오는 이런 논리로 에피스를 종속기업이 아닌 공동지배기업으로 회계처리를 변경해 4조5000억원의 평가이익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처음에는 2015년 12월께로 예정된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신청을 지배력 상실의 주된 사유로 삼으려 했지만 상장 이사회가 2016년 이후로 연기되자 ‘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복제약) 국내 판매승인, 유럽 예비승인’이라는 다른 현안을 지배력 상실 사유로 만들어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와 회계법인이 대규모 자본잠식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함께 ‘대응책’을 논의하고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라는 논리를 함께 개발한 점,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 간에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에 대해 누가 공격하면 방어를 못 한다는 취지의 대화가 이뤄지기도 했던 점 등에 비춰보면, (정당한 회계 처리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어 “2015년에 이루어진 에피스의 2개 제품에 대한 국내 판매승인,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의 긍정 의견 등은 에피스 설립 시부터 이미 계획된 것”이라며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에피스 사업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진행돼 오고 있던 것이었고,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동등성을 확보해 임상에 진입한 시점부터는 제품개발의 실패 위험성이 높다고 볼 수 없으므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의 변동을 일으켜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할 수 있는 중대 또는 특별한 이벤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는 처음부터 특정한 시기로 지배력 상실의 시점을 정해 놓았고, 2015년 12월31일자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임의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분식회계 고의 없어”…형사소송 1심과의 차이는 왜?





이번 재판부의 판단은 이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한 형사 소송 1심의 결론과 배치됩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제출 증거들에 대한 관련자들의 반박을 충실히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는 “이번 행정소송에서는 내부 문건이나 이메일 등의 문건 자체를 그대로 판단했다면, 1심 형사 소송에서는 회계사들 관련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해석을 한 점이 달라 보인다”며 “이번 행정소송의 결론은 항소심에서 주요한 증거로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2심 첫 정식 공판은 내달 30일에 열립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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