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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여름에도 창문에 겨울용 뽁뽁이 안떼...손님 없는 모습 숨기려고"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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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호부침개 백선기씨가 손님을 기다리면서 가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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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침개의 전면 유리창에는 여름인데도 ‘뽁뽁이’라 불리는 단열 시트가 붙어 있다. 이유를 묻자 점주 백선기(62)씨가 맥없이 웃었다.

" 손님 없이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몇 년 전 겨울에 붙여둔 걸 떼지 않고 있어. "

그는 4개월째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 처음 터 잡았을 때 그렸던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대구에서 현대차 딜러로 오래 일했던 그는 양말 도매업, 정수기 업체, 의료기 수입 판매업 등을 두루 거친 뒤 2010년 이곳에 정착했다. 공부 잘하던 아들이 서울대에 입학하면서다.

그는 ‘초심자의 행운’을 믿었다. 권리금 7000만원을 내고 호부침개를 창업한 데 이어 바로 이듬해 권리금 1억원을 더 내고 녹두곱창까지 인수했다. 녹두곱창은 한 때 ‘곱창계의 서울대’라는 상찬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면서 기대에 보답하는 듯했다.

하지만 상권 쇠락 앞에 장사는 없었다. 그가 녹두곱창을 매각했을 때 받은 돈(권리금)은 2500만원에 불과했다. 호부침개 역시 점주 인건비는 고사하고 월세 감당도 어려운 수준의 매출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 이 건물 1층이 죄다 공실인데 198만원인 월세가 너무 비싸서 인하 요청을 했는데 받아주지 않더라고. 최소한 월세만이라도 걱정 없이 낼 수 있으면 좋겠어. "

‘뽁뽁이’가 그의 타들어 가는 속까지 가리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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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닭발 점주 조현식씨는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속내를 대변하는 듯 하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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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은 ‘코로나’였다. 경남 거제에서 올라와 착실히 토대를 쌓아가던 몽닭발 조현식(가명·44)씨는 코로나 암초에 걸리면서 무너져내렸다. 새벽 장사를 하는 그에게 야간영업금지 명령은 사형 선고였다.

조씨는 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탔다. 주 3일간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배달원으로 일했다. 품삯이 오르는 공휴일과 주말, 비 오는 날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코로나 종식만 바라며 참고 버텼다. 그러나 그렇게 버틴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추석 때 받은 충격은 크다.

" 코로나 전에는 명절 때면 손님으로 미어터졌죠. 그런데 이번에는 연휴 기간 내내 일했는데도 예년의 절반도 안 팔렸어요. 애초에 닭발을 평소의 절반만 준비했는데도 남았어요 "

그는 자칭 ‘종합병원’이다. 새벽 4시까지 일하는 ‘거꾸로 인생’ 탓에 목과 허리 디스크를 달고 살았고 눈에 물이 차는 증상도 생겼다. 자녀가 없는 것도 고된 노동과 무관치 않다. 10년의 법적 임대 보호 기간 종료까지 임박해 내년에는 합법적으로 쫓겨날 판이다.

" 마이너스예요. 0점? 아니, 마이너스! "

‘생활 만족도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 장사? 무조건 말리고 싶어요. 쉽게 보면 절대 안 됩니다. "

그가 예비 자영업자에게 남긴 충고이자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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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열 명 이상의 직원들을 건사했던 신헌순씨는 현재 남편과 둘이서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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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성각 신헌순(59·여)씨는 최근 다리 교정 수술을 받았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같은 자세로 고된 노동을 하다 보니 다리가 휘었다. 대형 한식당 ‘한일관’에서 직장 동료로 남편을 만난 그는 결혼 후 시부모가 운영하던 중식당 ‘대성각’에서 이른바 ‘무급가족종사자’로 일했다.

이후 독립해 맥줏집, 족발집 등을 경영하다가 현 상호로 녹두거리와 중식업계로 돌아왔다. 중식이 어린이날과 배달 음식의 지존이었던 시절에는 열 명 이상의 직원들을 건사했지만, 지금은 남편과 단둘이 직원과 배달 없는 가게를 운영 중이다. 그는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라고 말했다.

" 최저임금 줘도 사람 못 구해요. 정부가 임금 올리면 직업소개소에서는 더 올려요. 지금 반 타임(4시간)만 일해도 6만5000원 받아요. 그런데 누가 최저임금 받고 온종일 일하려고 하겠어요? "

그는 “그렇게 일해도 부가세 납부 달에는 간혹 적자를 볼 정도로 대차대조표가 아슬아슬하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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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 ‘한국의 아킬레스건’ 자영업…51명의 슬픈 현실을 듣다

665만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섰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급증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자영업 문제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인구·복지·빈부격차·지방소멸 등 우리가 직면한 모든 논란거리가 자영업 문제에 결부돼 있다. 지체의 늪에 빠진 한국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털어야 할 난제다.

중앙일보는 창간 59주년을 맞아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 기획 보도를 시작한다. 먼저 두 달간 발품 팔아 만난 자영업자 51명의 목소리를 토대로 5일에 걸쳐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도한다.

후속 보도를 통해서는 숨은 문제들을 발굴하고 국내외 정책들을 점검하면서 해법과 대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각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독자와 국민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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