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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의정갈등 한마디도 없었다 … 尹·韓갈등 또 '어색한 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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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서범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이날 만찬은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해 약 90분간 진행됐다.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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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 90분가량 짧은 만찬회동을 가졌다. 겉으론 화기애애했지만 현안이 거론되는 걸 최대한 피하려는 윤 대통령과 독대를 원하는 한 대표 간 '동상이몽'이 노출된 자리였다. "우리 한 대표"라며 화합을 강조한 윤 대통령과 반대로 한 대표는 이날 재차 독대를 요청했다.

이날 오후 6시 32분께 가장 늦게 등장한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 14명에게 "잘 지내셨냐"는 안부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나눴다.

국민의힘 측에선 한 대표 외에 추경호 원내대표,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진종오·김종혁 최고위원, 김상훈 정책위의장, 서범수 사무총장 등이 일제히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서도 정진석 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과 수석비서관 8명 전원, 정혜전 대변인 등 12명이 배석했다. 참석자 전원은 '노타이' 정장 차림이었다.

이날 만찬회동은 지난 7월 24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튿날 신임 당 지도부와 만난 이후 꼭 두 달 만이다. 당정은 당초 당 지도부 인선이 완료된 직후인 지난달 30일 두 번째 만찬을 계획했으나, 대통령실에서 "추석 연휴 민심을 듣는 게 우선"이라며 추석 연휴 이후로 회동을 미루기로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한 대표가 2025년도 의대 증원 계획을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회동 연기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왔다. 거기에 주말 새 이른바 '독대' 논란이 불거지면서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술을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배려해 오미자차로 건배를 했고,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며 맞춤형 메뉴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진 식사 자리에선 체코 순방 성과, 원전 생태계, 국정감사, 여야 관계 등이 주요 대화 주제로 올랐다.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이제 곧 국감이 시작되나"라고 물으며 "여소야대 상황에서 고생이 많다"고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측 참석자는 "체코 방문 성과와 원전 산업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관련 얘기도 잠깐 언급됐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이후 윤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10여 분간 대통령실 분수공원에서 어린이야구장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산책을 마친 뒤 오후 8시께 "초선 의원들과는 식사를 했는데, 다음에는 재선·3선 의원들과도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이날 민감한 주제인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논란, 의료개혁 등의 의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대통령실이 "추후 협의하겠다"며 우회적으로 거절한 여파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참석자는 "서로 현안 문제를 거론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였다"며 "그냥 '밥 먹으러 왔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어떻게 보면 썰렁하고 어색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만찬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일 없이 윤 대통령 얘기를 경청하고 가끔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참석자는 "만찬 내내 한 대표에게 발언 기회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며 "보통은 짧게 모두발언하신 뒤 얘기를 좀 해보시라 권유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초청한 윤 대통령이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셨다. 어떻게 (한 대표 쪽에서) 얘기를 하겠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산책을 하는 도중에도 따로 별다른 이야기가 오고 가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산책 후 윤 대통령이 차에 탑승해 떠나자 남아 있던 홍철호 정무수석에게 "이렇게 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안 되니 다른 자리를 조속한 시일 내에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회동을 '신임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간 화합의 자리'라고 강조했으나, 물밑에서는 독대 거절을 둘러싼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 간 다툼이 불거졌다. 당내 갈등을 분출시킨 방아쇠는 독대 요청을 누가, 왜 공론화했는지다. 친윤계는 한 대표 측이 용산을 압박하기 위해 독대 문제를 이슈화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친한계는 민심 전달을 위한 요청일 뿐 대통령 흠집 내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친윤계이자 전 국민의힘 대표인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사전 유출돼 주요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잘 되질 않는다"며 "차기 대권을 위한 내부 분열은 용인될 수 없는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은 윤석열 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친한계는 독대 요청이 알려진 방식을 두고 친윤계 등이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을 비판했다. 친한계 장동혁 최고위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누가 먼저 그걸 (언론에) 이야기했든지 간에, 다소 부적절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형식 또는 절차가 내용에 앞서갈 문제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 역시 독대 요청을 의도적으로 노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만찬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일각에서 흘렸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도 야당은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비판하며 여권에 김 여사 특검 수용을 압박했다. 여론전을 통해 당정 갈등의 틈새를 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여사를 향해 "전생에 양파였느냐.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양파 껍질처럼 의혹들이 줄줄이 터져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추가 설명 없이 사자성어인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적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란 뜻으로 백성이 군주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겨냥한 글로 해석된다.

[안정훈 기자 / 김명환 기자 / 신유경 기자 / 박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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