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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일회용품 사용과 퇴출

‘일회용’ 그친 일회용컵 보증금제… “돌아온 건 손님 이탈” [심층기획-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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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규제에 지자체·점주 ‘울상’

정부, 제주·세종서 시범사업 벌였지만

자영업자 반발 등 이유 전국 확대 유예

식당·카페 등 종이컵 사용 금지 철회도

제주, 보증금 도입 매장 97% 달했는데

당국 입장 선회 영향 10개월 새 ‘반토막’

세종도 참여율 66%서 37%로 떨어져

업주 “정책 바뀌자 고객들도 헷갈려 해

보증금 요구하면 주문 취소하고 나가”

사실상 규제 포기 탓 컵 회수율도 줄어

“일회용컵 보증금제 우수 업소였는데 올해 초부터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제주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하는 한 40대 점주는 25일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 시행은 어렵더라도 의무화 대상의 형평성 문제를 개선해 제주에서라도 유지했다면 제도 이탈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볼멘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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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지역인 세종시의 한 커피숍에서 손님이 일회용컵에 담긴 커피를 받고 있다. 이 커피숍은 지난해까지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동참했지만 손님들이 혼란스러워하자 올해 초 이탈했다. 세종=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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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보람동 세종시청 근처의 한 카페 사장 김모(40)씨는 “정부의 환경정책에 동참했지만 돌아온 건 손님들의 이탈뿐이었다”며 “손님들도 카페마다 일관적이지 않다 보니 헷갈린다며 진작부터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2000원짜리 커피를 사면 300원의 보증금을 받는데, 나중에 일회용컵을 돌려주러 오는 손님이 점차 줄더라”면서 “어느 날은 단체 손님 10명이 커피를 주문했다가 보증금제를 시행한다고 하니 일괄 취소하고 나가는 걸 보고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 시행 5개월 만에 이탈했다.

정부의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에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범사업 시·도와 점주들 마음이 꺾이고 있다. 제주도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커피나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 판매할 때 소비자로부터 300원의 보증금을 받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다. 당초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유예를 거쳐 2022년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에서만 시범사업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11월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한 입장을 선회하면서 참여율과 컵 반환율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환경부는 당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반발 등을 이유로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늦추고 지자체 자율에 맡기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식당이나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도 철회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최근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대해 “정책은 기본적으로 수용성이 있고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보증금제도 그런 측면에서는 돌아볼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당장 정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계획을 접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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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 같은 입장 선회 때문인지 일회용컵 보증금 참여율과 반환율은 급감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제도 시행 초기 매장 참여율은 96.8%까지 올랐다. 하지만 보증금제 전국 시행에 대한 정부의 미적지근한 태도, 사실상 일회용품 규제 정책 포기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매장 참여율은 50%대로 떨어지고 컵 회수율도 하락하고 있다.

올해 7월 제주도 내 커피 판매 매장 등의 일회용컵 보증금제 참여 대상은 284곳으로 전체 대상 매장(533곳)의 53.3%였다. 지난해 9월에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상 매장 502곳 중 486곳이 동참해 참여율이 96.8%에 달했지만 10개월 만에 참여율이 43.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참여율은 시행 초기인 2022년 12월 57.6%에서 지난해 7월 96.6%, 9월 96.8% 등으로 올랐다가 11월 67.3%, 올해 5월 54.5%, 6월 55.7% 등으로 하락하고 있다.

또다른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지역인 세종시 사정도 엇비슷하다. 세종시의 경우 올 7월 기준 대상 매장 195곳 중 74곳만 시행해 참여율이 37.9%에 그쳤다. 1년 전인 2023년 7월 참여율은 66.5%(182곳 중 121곳)였다. 세종 지역 프랜차이즈 한 카페는 약 4개월 전 일회용컵 보증금제 참여를 접었다. 카페 사장은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혼란스러운 데다 손님들도 헷갈려하면서 아예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너편 커피숍도 올 2월까지만 참여한 것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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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정부 정책 변화는 환경 분야 선진국들의 흐름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최근 몇년 새 보증금제 적용을 확대하고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재 폐기물 규정(PPWR)’ 합의안 가결에 따라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9년 1월까지 일회용 플라스틱·금속음료병에 대한 보증금 도입을 의무화해 90% 이상 분리수거를 목표로 하고 있다. 페트병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2025년부터 25% 이상, 2030년부터 30% 이상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관계자는 “유럽은 일회용 규제를 향해 전진 중”이라며 “보증금제를 통해 수거율을 높여 재활용하는 경제수단과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율 향상이란 직접 규제 방식의 투트랙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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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한 커피숍 문에 부착돼 있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안내문. 세종=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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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율 100%를 눈앞에 뒀던 제주도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힘 잃은 보증금제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참여 매장 등을 상대로 인센티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도는 성실히 이행하는 85개 매장을 ‘자원순환우수업소’로 선정했다. 이번에 선정된 85개 매장 중 6개 매장은 보증금제 대상 매장이 아니지만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곳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최근 동력을 잃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제주도 차원에서라도 활성화하고,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 정책을 발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세종=임성준·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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