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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앵커칼럼 오늘] 육영수 여사 활동비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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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녀들은 첫 무도회에서 월플라워 신세가 될까 봐, 이 말을 기다리지요. 춤 추실까요."

월플라워(Wallflower)란, 파티에서 춤을 청하는 사람이 없어 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입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공식 자리에 잘 나서지 않아서 그렇게 불렸지요.

우리 영부인들은 대체로 조용한 내조형 이었습니다. 다소 튀는 성격에 '베개송사'로 남편을 압박한 예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인의 바른 처신과 내조자의 다소곳함을 치우침 없이 병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일을 현명하게 해낸 분이 육영수 여사입니다.

육 여사가 쓴 활동비 내역을 꼼꼼히 정리한 장부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소장 전시된다고 합니다. 대통령에게서 다달이 받은 20만 원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왔는지가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서대문 오 모씨 백혈병 치료비 2만 원, 나주여중 정 모양 학비 만8천백60 원, 정박아 부모회 매달 2만 원…'

그렇듯 공적인 일에만 쓰고, 자신과 가족 비용은 대통령이 건네는 월급에서 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옷감'에 7천 원을 썼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역시 형편이 어려운 청와대 주방 아주머니에게 옷을 지어준 돈이라고 합니다.

육 여사는 활동비 수표를 헌 돈으로 바꿔 오라고 했습니다. 띠지가 묶인 신권의 권위적 느낌을 없애, 받는 이를 배려했지요.

며칠 전 용산 대통령실 출신 의원이 말했습니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깎아내리는 건 국민을 공격하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어떤 참모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난국에 단합 회식이 돼버린 '유구무언' 만찬 풍경하고도 겹칩니다.

김 여사 문제가 하나 둘 끊임없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여권과 보수를 깊이 가라앉히는 수렁이 돼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믿는 걸까요.

화장실에도 인간을 일깨우는 지혜가 있습니다.

'치약이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기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9월 26일 앵커칼럼 오늘 '육영수 여사 활동비 장부' 였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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