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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트럼프 파워 여전한 美대선 자유주의 기반 국제 질서 전환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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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책을 써 화제를 모았던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을 만난 날 미 주요 언론들은 미 대선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내놨다. ‘뉴욕타임스’ 조사에서는 동률이라고 까지 나왔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대선을 한 달 반 정도 남겨둔 시점에 나온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TV토론회로 1차 암살 위기를 대세론으로 바꾼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잠재우는 듯했던 해리스 부통령이었기에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병제 전 원장은 이를 두고 “2023년 퓨리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들은 자국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바탕에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기반의 국제 질서에 대한 회의가 깔려 있다”면서 “트럼프는 이 점을 공략해 정치적 성공을 거뒀고 지금도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리스와 대등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트럼프에 대한 평을 언급했다. 조 원장은 “2018년 키신저는 트럼프에 대해 역사상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내는 인물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대의 종언’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질서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세 트럼프가 내세우는 정책들은 그동안 미국이 적극 추진해왔던 자유주의 질서와는 상반된 것이다. 관세 장벽을 통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세계의 경찰 노릇도 대가 없이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트럼프의 지향점은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지만 초박빙의 미 대선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사회 내 흐름은 외부의 걱정과는 딴판이다.

조 원장은 “그래서 일종의 시대정신이 트럼프를 관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번 미 대선 흐름은 세계 질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해리스 부통령이 이긴다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체제 속에 자유민주주의가 재생되고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다시 주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가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 중 폐기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면서 “지금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고, 제 2, 제 3의 트럼프는 계속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세계화는 끝났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이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든지 아니든지간에 트럼프의 귀환은 이미 이뤄졌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매일경제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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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 외교부 북미국장, 주미얀마 대사, 주말레이시아 대사, 외시 15회, 서울대 외교학과, 영국 서섹스대 대학원 국제정치학과


Q 초박빙의 여론조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논란이 많은 트럼프의 경쟁력이라고 봐야 할까요.

A 트럼프가 지난 대선 패배 후 이렇게 빨리 등장해 당선 가능성을 계속 가져가는 선거전을 펼친다는 것만 봐도 미국이 그동안 주도했던 국제 사회의 질서가 바뀌는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상태가 돼 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주장하는 것들은 기존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미국을 이끌어왔다고 자부하는 주축 세력에서는 걱정의 눈으로 바라보지만 트럼프의 지지층인 중산층과 소시민들은 열렬히 반응합니다. 그동안 누적된 미국 사회의 불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죠.

Q 그 불만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A 삶이 팍팍한 거죠. 결국 경제 문제인데, 세계화 이후 미국 중산층을 뒷받침했던 제조업이 망가졌고, 빈부 격차도 심해졌습니다. 2011년 자본주의 상징과도 같은 월스트리트를 성난 시위대가 점령한 사건 아시죠? 잊혀진 듯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불만은 점점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트럼프는 이 지점을 잘 건드린 것이죠. 게다가 바이든 정부 들어 인플레이션으로 고공행진을 하는 물가에 고생을 하자 트럼프 선호현상이 생각보다 더 강하게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때를 제외하고는 트럼프가 경제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Q 미국 내 정치적 양극화는 정말 심각한 것 같습니다.

A 누적된 불만들이 결집돼 공고히 된 것이죠. 랜드슬라이드 카운티(Landslide County)라고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20% 이상 또는 그 이상 되는 카운티를 말하는데. 2000년대 초반 30~40개였던 지금은 60곳 정도 됩니다. 그만큼 현재 미국사회 내 지지정당의 쏠림현상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대선 막바지인 지금 이미 유권자의 90% 이상이 마음을 정했다고 봅니다. 트럼프와 해리스 후보에 대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적 확신을 갖는 유권자들이 절대 다수라는 것입니다. 이를 정체성의 정치라고 합니다.

Q 두 번의 암살시도까지 일어났습니다.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것 아닌가요.

A 미국 내 정치적 폭력은 정말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유력 대통령 후보에 대해 두 번이나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미국 선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1960년대 당시 J.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격으로 암살 당한 일이 있습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동일 인물을 대상으로 두 번이나 저격이 시도됐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지난 7월 시카고대학교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10%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정치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자의 7%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정치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체 17%가 폭력을 어떤 문제 의식도 없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거죠. 미국에 만연한 총기 보급 현황을 보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됩니다.

Q 내란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인데요.

A 사실 트럼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대선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겠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1차 대선 토론 당시 CNN 앵커가 세 번이나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겠냐고 물었는데, 답하지 않다가 세 번째 같은 질문에서 마지못해 ‘합법적으로 치러지면 내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의 합법적 여부를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요. 만일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후에 또 다시 부정선거를 주장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입니다.

Q 솔직히 국제사회는 트럼프 리스크 때문에 민주당의 재집권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우리 시각에서도 그럴 수 있는데 하지만 현 미국의 상황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앞서도 언급한 ‘질서의 전환’이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민주당의 재집권을 은근히 원하는 분위기 또한 물론 현 글로벌 사회의 주된 이념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수십 년간 국제사회를 지탱해 왔던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깨고 싶어 합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 국민 절반이 이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죠. 만일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미국 사회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고, 세계 1위의 강대국인 미국이 그렇게 흘러가면 세계는 그에 맞춰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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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도 민주당 정권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트럼프발 리스크는 희석이 되지 않겠습니까.

A 물론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이 되면 미국이 주도해왔던 기존 국제 질서는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분간’이란 전제가 붙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의 기치를 내걸며 세계의 경찰 노릇을 했던 미국이지만, 이제는 이것을 하기 싫다고 하는 분위기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이미 이런 기류를 읽고 있습니다. 바이든 정권 들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했던 여러 조치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세계무역기구(WTO)의 상소기구 위원이 아직도 선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무역의 상징인 WTO의 무역 분쟁 해결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만일 미국 내에서 이런 기류 강해진다면 FTA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트럼프의 정책인 보편관세 등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을 우리는 잘 봐야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FTA 확대를 지금 시점에서 언급하는 정부의 인식은 좀 답답합니다.

Q 만약에 이번에 트럼프가 당선이 되지 않는다면 미 사회의 축적된 모순은 어떻게 될까요.

A 이는 해리스 부통령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지금 미국은 이미 2개로 나뉜 상태나 마찬가지거든요. 민주당이 기존 미국 질서를 강하게 유지하려 할수록 미국 사회 내 반발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Q 세계 질서의 흐름이 트럼프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면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의 대응이 앞으로 참 힘들 것 같습니다.

A 당연히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제조업 위주의 수출 강국들은 상당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와중에 미·중 갈등까지 더 심해진다면 더 어려워지겠지요. 그래서 이제는 이념보다 ‘이익’에 더 중점을 두는 국가 정책 역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집권하게 되면 당장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가 날라 올 것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동맹도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죠. 우리도 국익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합니다.

Q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정책들이 있다면요.

A 반도체(Chips Act),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등 미국 제조업 재건 관련 이슈는 모두 주목해야 합니다. 다만 어느 당이 집권하든 차기 행정부 임기중 관련 법 모두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주시를 해야 합니다.

Q 초박빙의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우리 대북 정책도 상당히 달라질 것 같습니다.

A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리 정부 입장이 난처해질 것 입니다. 트럼프는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바로 소통을 시작할 것입니다. 성과가 있건 없건 간에 정상회담을 하는 모양새도 갖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통미봉남이라는 말이 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만큼 현 정부의 활동 공간이 확 쪼그라드는 거죠. 그래서 이념보다는 이익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Q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강에서 비핵화 단어가 빠졌는데.

A 미국 정치권에서 북핵과 관련해서 ‘잠정 조치’라고 하는 말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이는 그동안 강조돼온 ‘완전한 비핵화’ 접근과는 결이 다른 것입니다. 사실상 단계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인데 최근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에서 비핵화란 단어가 빠진 것과 무관치 않은 흐름이라고 봅니다.

[문수인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9호 (2024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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