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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난 아닌데’…내가 걸핏하면 화를 낸다고요? 그래서 피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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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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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가명)씨는 중소기업에서 개발팀 과장으로 근무하는 40대 남성입니다. 그는 조용한 편이고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도씨는 남 모를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다니는 듯한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입사 뒤 처음 몇번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지만 요즘에는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도 자신이 다가가면 싫어하고 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도씨는 같은 팀 동료에게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동료는 ‘영도씨가 유난히 화를 많이 내서 피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화를 많이 낸다고?” 영도씨 생각에 자신은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에 대해 뒷담화하거나 다툼을 일으킨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주위를 살펴보니 다른 동료들이 자신을 피하는 느낌이 더 심하게 들었습니다. 영도씨는 이전보다 더욱 예민해졌고, 자신에 대해 지적하면 편하게 받아들이거나 넘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무척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회사에 다녀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습관적 반응과 사고 극복해야





그러던 어느 날 팀 회의 시간에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회의 중에 영도씨가 의견을 이야기하자, 한 동료가 “영도씨는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이야기해요? 회의 시간에 그렇게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는 게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알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영도씨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요? 왜 나를 모두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요!” 그는 회의실을 나가버렸고 다음날 회사를 무단결근하게 되었습니다.



영도씨는 동료들이 모두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에 회사에 출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그의 편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회의에서 자신을 비난하던 동료들이 생각나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자신이 그런 상황인데도 누구도 나서주지를 않았습니다. 영도씨는 몸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몸을 까딱하기도 힘들어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영도씨는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방문하였습니다. 자신은 화를 내지 않는데 주위에서 자신에게 화를 많이 낸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검사상 영도씨는 인지적 유연성이 부족했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은 습관화된 반응이나 사고를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 높을수록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찾고, 반대 관점에도 개방적이어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 유리합니다. 영도씨는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져서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도 듣지 않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못 듣게 됩니다.



영도씨가 인지적인 유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강박적인 성격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영도씨는 자신만의 완벽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부분에 다른 입장을 제시하면 자신이 가진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화가 나게 됩니다. 강박적인 성격은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데는 둔감하고, 내 자신이 소외당하는 느낌에는 무척 민감합니다. 영도씨는 소외를 피하기 위해 회사의 임원들에게는 지나치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 모습도 주위 동료들에게는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영도씨에게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을 개선해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 공통점이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 부분을 먼저 존중해주고 내 생각과 같은 부분을 공감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내 의견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로 대화하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맞으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그 사람의 이야기가 더 좋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자신의 생각을 조정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 있으면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생각도 성장하게 됩니다.





‘권위엔 무조건 굴복’ 태도도 고쳐





영도씨는 회사에 다시 출근해 자신의 인지적 유연성을 개선하고 강박적 성격을 극복해보기로 했습니다. 회의를 할 때 동료들의 이야기를 더욱 많이 듣고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에 동의해주고 좋은 생각이라는 리액션을 해보았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눈을 치켜뜨는 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도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순종하는 태도도 고치기로 했습니다. 영도씨의 강박적인 성격은 권위 있는 존재에 대해 복종을 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마치 어릴 때 자신의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윗사람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도씨가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무척 불편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영도씨가 잘되기 위해서 아부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결국 영도씨가 하는 말에 대한 신뢰도 없어지게 됩니다.



영도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왜 사람들이 자신이 화를 내는 것 같다고 느끼는지 왜 자신을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지적 유연성 부족과 강박적 성격을 항상 생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주위 동료와 후배들과도 이전보다 훨씬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료들과 관계가 좋아지니 업무도 잘되고 회사 실적도 더욱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전홍진│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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