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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삼성전자 걱정보다 혁신에 저항하는 우리 사회부터 반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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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반도체 입문’이 고교 필수… 사실상 전국민에 반도체 교육

혁신지향 사회와 규제지향 사회의 격차… 유럽이 쓴 반성문을 보라

규제는 쇄국의 상징… AI시대, 국민 모두의 세계관 전환이 절실하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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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지금 대만 경제는 신이 났다. 대장 기업인 TSMC가 연일 매출 신기록을 내면서 주가도 신나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TSMC뿐 아니라 많은 관련 기업들이 동반 상승 중이다. TSMC가 이토록 폭발 성장하게 된 것은 그동안 공들였던 파운드리 분야에서 경쟁 기업인 삼성전자와 큰 격차를 벌리면서 AI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주문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심지어 가격을 50% 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엔비디아는 꼼짝없이 받아들였다. 대안이 없다.

엔비디아는 지금 초고속으로 성장 중이다. 실적 발표만 하면 어닝 서프라이즈고 신기록이다. 최근 생성형 AI 계산과 서비스에서 가장 빠르고 전기를 적게 쓰는 최신 블랙웰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순식간에 1년 치 생산분이 완판되었다고 발표했다. 시총도 4400조원을 돌파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꺾고 애플에 이어 세계 2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렇게 내놓는 상품마다 완판이고, 그것도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니 기업은 신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품에 들어가는 GPU 칩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 TSMC 하나뿐이니 가격 협상도 불가능하고, 돈을 내면서도 항상 을의 처지다. 이러니 대만은 신날 수밖에.

그런데 TSMC는 어떻게 세계 1위 반도체 제조 기업이 되었을까?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서도 메모리 제조 분야에 집중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메모리만큼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다. 반면 대만은 주문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 집중 투자해 왔다. 반도체 산업 도전 시기에 이미 미국과 일본이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모두 선점하고 있던 탓에 하청 생산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 네임은 없었지만 주문받은 반도체 생산 기술만큼은 세계 1위로 키워냈다. 그런데 파운드리 시장이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 번 돈을 대거 투자해 파운드리 산업에서 TSMC를 추격하는 노력을 해왔는데 이 기술 격차를 극복하는 길이 험난했다. 우리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황제라고 하던 인텔도 결국 이 도전에 실패하고 적자를 기록하며 주가가 하루 26% 폭락하더니 지금은 구조 조정과 M&A라는 최악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만큼 기술이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고 기술이라는 3~5나노 반도체 제조 기술의 TSMC 시장 점유율은 무려 92%에 달한다. 그야말로 싹쓸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려운 걸 대만이 해낸 것은 여러 요건이 합쳐진 덕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전 국민이 반도체 산업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합의하고 세계관을 바꾼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대만은 일찌감치 반도체 입문 교육을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도입했다. 말하자면 2500만 대만 국민들에게 반도체는 기본 상식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당연히 관련 학과가 많아지고 인재 규모가 커진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충분한 인재 확보가 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만 있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소재, 부품, 장비 등 전 분야에서 엄청나게 많은 작은 기업이 연구 개발에 투자해 첨단 기술력을 축적하고 매년 또 신기술을 개발해야 앞서 갈 수 있는 산업이다. 결국 풍부한 연구 개발 인재가 산업을 키우는 에너지가 된 셈이다. 대만이 그 어려운 걸 오랜 기간에 걸쳐 실천했고 지금 그 과실을 따는 중이다. 대만 가권의 주가지수는 불과 1년 사이 43% 상승했고 전체 기업 시총 합계는 3000조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인구 2배인 우리나라가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10% 상승에 머물고 전체 시총 합계가 2600조원에 불과한 걸 보면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가져다 준 열매는 정말 달콤해 보인다. 이러니 TSMC를 국민 모두가 호국신산(護國神山·나라를 지키는 신령한 산)이라 부를 만하다. 초격차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이렇게 국민 전체의 세계관이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도전해야 한다.

최근 유럽은 자기 반성 보고서에서 디지털 문명 전환에 규제와 기존 산업 보호로 대응했던 것이 현재의 실패 원인이라고 실토했다. 1995년만 해도 미국과 비슷했던 GDP는 이제 30% 이상 격차가 나버렸고(2022년 기준 미국 25.5조달러, EU 17조달러)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여 년간 규제는 강화하고 경쟁은 게을리한 결과라고 자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인공지능의 아버지) 교수나 데미스 허사비스(알파고를 만든 인물) 모두 영국 출신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창업한 첨단 디지털 관련 스타트업의 70%가 미국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은 혁신을 지향하는 사회와 규제를 지향하는 사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년간 유럽을 모델로 삼으며 경쟁보다는 보호, 혁신보다는 규제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우버 불법, 에어비앤비 불법, 주 52시간 이상 근무 불법 등 법이 경쟁을 막아서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물론 그때는 국민 모두가 찬성한 길이니 누구도 탓할 수는 없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나눠 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년간 반도체 산업 불황으로 못 걷은 세금만 60조가 넘는다고 아우성인데 이제는 삼성전자 위기론까지 겹쳤다. 모두가 삼성전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석하고 이것 저것 고치라고 난리법석이다. 호국신산은커녕 호구 대접하더니 지적질에는 참으로 열정적이다.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혁신보다 규제를, 경쟁보다는 보호를 열망했던 우리 국민 마음 자세가 아닐까? 규제는 쇄국의 장벽이다. AI 시대 국민 모두의 세계관 전환이 절실하다. 삼성전자 걱정보다 혁신에 대한 우리 사회 세계관부터 챙겨 볼 때다.

‘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최재붕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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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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