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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김창규의 시선] MS 부활이 던진 기업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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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창규 경제에디터


지난 17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의 TSMC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발표했다. 3분기 매출은 7596억9000만 대만달러(약 32조3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했다. 순이익은 3252억6000만 대만달러(약 13조80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54.2% 늘었다. 시장 예상치 3000억 대만달러(약 12조7000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이다. 이에 앞선 8일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79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늘었다.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75% 급증했지만, 시장 예상치(10조89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MS·소니 등 주요 기업 부침 겪어

전문가 “1등 안주, 소통 부족” 진단

부활 핵심은 기술, 경청하는 문화

삼성전자 시가총액(22일 기준)은 344조4565억원, TSMC는 1조474억 달러(1445조5167억원, 21일 기준)다. MS·소니 등 세계의 주요 기업은 부침을 겪었다. 실적이 나빠질 때 전문가의 진단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혁신과 소통이 부족하고 시장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PC 혁명’의 주역에서, ‘늙은 공룡’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쇠락의 길을 걷다가, 부활에 성공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례는 극적이다.

윈도우 컴퓨터 운영체제(OS)로 세계 PC 시장을 호령했던 MS는 2000년대 ‘모바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글과 애플에 밀리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할 당시 MS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내부적으로는 오랜 기간 경쟁 없이 1위를 한 탓에 관료주의가 만연해 직원간 소통이 막혔고 협업을 멀리했다. 외부적으로는 윈도우8의 사용이 불편하다며 소비자가 사용을 꺼렸다. 또 윈도우폰 실적은 저조했고 검색엔진 점유율도 존재감이 없었다. “당장 돈 버는 데만 급급해 미래를 이끌 새 아이디어를 거부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실적과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나델라 CEO는 관료주의 조직문화를 조장하고 혁신을 무력화한다고 지목된 ‘스택 랭킹(stack ranking)’ 평가 시스템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스택 랭킹은 직원 사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업무 성과를 최고, 양호, 평균, 빈약 등으로 줄 세웠다. 상대평가이다 보니 같은 팀 내에서도 누군가는 최하위 순위가 돼야 했다. 직원은 각자 일하며 단기 목표 달성에만 신경 쓰게 되고 뛰어난 엔지니어일수록 공동작업을 기피했다.

나델라 CEO는 연초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평가하는 스택 랭킹은 각종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기술 발전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절대평가로 바꿨다. 또 평가에 협업을 독려하는 요소를 포함시켰다. ‘원 마이크로소프트(One Microsoft)’ 정책을 시행해 부서 간 협업과 아이디어 공유를 장려했다. 개발자가 팀을 이뤄 일정한 시간 내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얻어내는 해커톤(hacking과 marathon의 합성어)을 열기도 했다. MS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에서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로 조금씩 바뀌었다.

나델라 CEO에게 더 큰 문제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새로운 사업이었다. 여기에 난관은 오픈소스 기반 OS인 리눅스였다. 빌 게이츠 전 CEO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을 ‘공산주의’에 빗대기도 했으며 스티브 발머 전 CEO도 ‘리눅스는 암 덩어리’라고 직격할 정도로 반감이 컸다. SW를 팔아 돈을 버는 MS 입장에서는 공짜 SW가 넘치게 하는 리눅스가 SW산업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나델라 CEO는 모바일 시대에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이라고 봤다. 수많은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서버·데이터베이스·SW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라우드의 확장을 위해선 오픈소스가 꼭 필요했다. 결국 그는 “MS는 리눅스를 사랑한다(Microsoft loves Linux)”고 외쳤고 MS는 클라우드의 성장을 통해 부활에 성공했다.

기업 경영에서 정답은 없다. 과거에 장점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엔 단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본질적인 건 기술이다. 그 기술이 세상에 나오게 하는 기업문화, 그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경영자의 안목이 뒷받침돼야 한다.

“더 많이 듣고(Listen more), 덜 말하고(Talk less), 때가 되면 결단력 있게 행동하라(Be decisive when the time comes).” 나델라 CEO가 꼽은 리더의 덕목이다. 오래전에 삼성 창업자 고(故) 이병철(1910~87년) 회장이 강조한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1979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셋째 아들 건희에게 붓글씨로 ‘경청(傾聽)’이라는 글귀를 써서 건네기도 했다.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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