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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시론] 소방시설의 중요성 보여준 전기차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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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과 겸임교수


얼마 전에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 지하에서 충전 중이던 기아 니로 EV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 긴급 출동한 소방서가 특수진압차를 투입해 큰 피해는 막았다. 앞서 인천 청라지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EQE의 화재로 놀란 터라 주민들과 제조사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벤츠와 니로 화재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다. 공통점은 화재에 인적 요인이 없다는 점이다. 벤츠는 주차 중에 불이 났고, 니로는 충전 중에 불이 났기 때문이다. 소방청이 2021년부터 3년 동안 발생한 전기차 화재 139건을 상황별로 분류했다. 운행 중 화재는 68건, 주차 중 36건, 충전 중에 일어난 경우도 26건이나 됐다. 운행은 운전자가 작동하니 인적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주차와 충전은 사람의 개입이 없어 제조물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



소방시설 유무에 따라 피해 달라

전기차로 가는 큰 흐름은 불가피

화재 원인 따른 맞춤형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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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화재 확산 여부다. 두 화재 모두 인적 요인이 없음에도 벤츠는 큰 피해가 일어난 반면 니로는 즉시 진압됐다. 차이는 스프링클러의 작동 여부다. 벤츠 화재 때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니로 화재 때는 즉시 스프링클러에서 물을 분사해 연쇄 화재를 막았다.

화재 발생 조건은 조금 다르지만 피해 규모를 결정지은 핵심 요소는 소방시설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화재 발생 원인과 화재 확산은 구분해 봐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대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배터리 생산지와 제조사를 화재 위험성과 연관 짓는 시각도 우려스럽다. 불이 난 니로에 탑재된 배터리는 국산이다. 반면 벤츠에 탑재된 배터리는 중국산이다. 일부에선 국산과 중국산을 구분해 화재 위험성에 생산국을 연결 지으려 한다.

하지만 배터리 생산지와 공급사는 완성차 기업이 배터리 셀을 선택할 때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완성차 업체는 모든 배터리 기업이 생산하는 셀의 품질·성능·가격은 물론 물류 조건 등을 고려해 선택한다. 업체마다 내부에 자체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통과한 제품을 적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생산지를 위험성과 연관 지으면 중국산 셀이 들어간 국산 전기차는 물론 중국에서 생산돼 수입되는 테슬라 제품의 화재 위험성도 높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배터리 생산지와 공급사가 화재에 영향을 준다는 유의미한 통계는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완성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전기차 화재 위험을 낮추기 위해 어떤 예방적 기능을 적용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실제 완성차 기업이 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는 배터리 위험을 사전에 측정해 소유자에게 알려 선제적 조치를 유도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전기차 제조사마다 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의 역할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엔진에서 연료를 연소해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은 물론이고 액체 전해질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에서도 아직은 자동차 화재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3년 동안 일어난 내연기관 화재는 1만933건이고, 주차장에서 일어난 화재는 2024건이다. 전기차 내부 원인도 찾아야 하겠지만, 확산을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화재 확산 억제는 소방시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화재가 잇따르자 ‘전기차 포비아’란 말이 회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재 없는 배터리 개발 속도는 빨라지고, 화재 예방을 위한 BMS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면서 화석연료 사용 억제 목소리도 높다.

내연기관과 전기차 확산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바퀴 동력을 전기로 사용하자는 데 대해선 동의하는 분위기다. 차이가 있다면 별도로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에서 수소로 직접 전기를 만들 것인가만 다를 뿐이다. 둘 다 바퀴에 회전력을 만들어주는 동력은 전기다.

마차 시대에서 증기기관으로 넘어올 때, 그리고 증기기관이 내연기관으로 전환될 때도 화재가 이슈였다. 그래도 마차 시대가 끝난 것처럼 속도가 잠시 조절될 뿐 전기차 전환은 대세다. 전기차 화재 발생 원인과 확산 이유, 그리고 맞춤형 대책에 대해 냉철한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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