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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글로벌 아이] 매듭이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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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현예 도쿄 특파원


생쪽에 국화, 장구, 매화, 병아리에 파리, 잠자리까지. 부끄럽게도 다양한 이름이 붙은 우리 매듭 종류가 무려 38가지나 있다는 사실을 안 건 김혜순 매듭장(국가무형문화재)을 만나고 나서였다. 55년간 매듭짓는 일을 해온 그의 나이는 올해 80세. 지난 23일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위해 도쿄를 찾은 그를 만났다. 김 매듭장은 실 이야기부터 꺼냈다.

먼저 여러 가닥의 실을 짜 매듭의 원형 같은 끈목을 만든다. 이 끈이 만들어진 뒤에서야 매듭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기본형으로 불리는 38가지 매듭을 수직으로 엮어가며 작품을 만드는데, 우리 매듭의 특징인 술을 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렇기에 지난한 시간, 실과 끈을 마주하는 끈기와 절제, 그리고 사람에 대한 마음까지 담아야 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단다. “예컨대 결혼식에 쓰이는 매듭이라면 두 사람을 연결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아요. 가정의 융성과 화평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매듭을 마주해야 제대로 된 매듭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3년을 공부해야 기본을 알고, 10년을 해야 매듭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매듭에 노리개나 허리띠, 갓끈, 부채 고리에 다는 선추(扇錘) 같은 장신구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 매듭장은 천에 자수를 놓고 매듭으로 한폭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대 장치에 도전하며 전통 매듭의 영역을 넓히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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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매듭장이 지난 23일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매듭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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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은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집도 ‘짓고’, 밥도 ‘짓고’, 매듭도 ‘짓는다’고 우리 선조들이 말한 데엔 까닭이 있다는 거다. “매듭은 끈의 굵기, 색이 다 다르니 하나하나 과정이 소중해요. 재능도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궁리하고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해요. 한 번 지은 매듭은 되돌릴 수도 없어요. 인생도 그렇잖아요? 어떤 일이 있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반백 년 한길을 걸어온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웃 나라 일본서까지 한국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아내’ 논란이 화제다. 명품 가방을 받고,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리고, 공천개입 논란까지 일으킨 ‘그 여사’ 얘기다. 최근 일본의 한 지인과 일본 새 총리 등장과 함께 내년으로 다가온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어찌 될 것 같냐는 이야기를 나누다 “그것보다 아내 일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일순 대화가 멈췄다. 부끄러움은 왜 국민의 몫이어야 하나. 정말, 매듭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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