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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발레는 겸손한 춤, 결점을 찾아야 나아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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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의 韓 전막 무대 ‘발레의 여왕’ 박세은 인터뷰

조선일보

자신이 주역 무용수로 무대에 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 공연의 29일 개막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습 중인 박세은 발레리나.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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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이 오는 29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로맨틱 발레의 걸작 ‘라 바야데르’. 이 무대 위엔 세계 발레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 춤춘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알(불어로 ‘별’을 뜻하는 수석무용수 호칭) 박세은(35). 러시아 마린스키발레 수석무용수 김기민(32)과 함께 주역 듀엣이다. 두 사람은 모두 세계 무용계 최고 영예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공연 티켓은 3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박세은은 김기민의 한예종 선배.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하기 한 해 전인 2010년 국내에서 김기민과 함께 ‘라 바야데르’를 공연한 적이 있다. 22일 오후 만난 박세은은 “그동안에도 국내 갈라 공연 무대에 섰지만, 제가 전막 발레로 국내 무대에 서는 것은 14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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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한국서 14년 만의 ′라 바야데르’

두 사람의 ‘라 바야데르’ 인연은 살짝살짝 어긋났다. 2015년 3월 박세은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 초청돼 니키아를 연기할 때는 김기민이 객석에서, 같은 해 12월 김기민이 파리오페라극장에 초청받아 솔로르를 연기할 때는 박세은이 객석에서 서로의 ‘라 바야데르’ 공연을 지켜봤다. “마린스키에서 어떤 스타일로 춤춰야 할지 고민할 때 기민이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러시아냐 프랑스냐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누나 스타일로 춰’ 하고 확신을 줬거든요.” 두 사람은 한식집에 데려가주거나 라면, 햇반, 통증 치료제 같은 것도 가져다주며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이 작품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2~3시간 전화로 토론하다 싸우고 끊은 적도 있다니까요, 하하. 그래도 ‘라 바야데르’는 김기민이 정석이죠. 제가 많이 배워요.”

◇'발레 블랑’의 마법, 예전 그대로

‘라 바야데르’ 3막 도입부의 군무 ‘망령들의 왕국’은 ‘지젤’ ‘백조의 호수’ 군무와 함께 새하얀 튀튀를 입은 순백의 발레리나들이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허공에 떠다니듯 춤추는 ‘발레 블랑(Ballet Blanc·백색 발레)’의 최고 명장면. “어릴 적 팔다리까지 하얗게 칠한 발레리나들의 춤을 객석에서 보며 ‘이건 진짜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의 파리오페라발레처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를 담아 자기 피부색 그대로 무대에 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번엔 어릴 적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춤출 수 있어 공연이 더 가슴에 새겨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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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야데르’ 3막 도입부 ‘망령들의 왕국’ 장면. 순백의 발레리나 32명이 느리고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 블랑(Ballet Blanc·백색 발레)’의 명장면이다.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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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은 ‘니키아’에 대해 “꾸밀 필요 없이 내 자신 그대로 할 수 있는 역할 같다”고도 했다. 그에게 이번 공연은 2010년 서울, 20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2022년 파리에 이어 네 번째 ‘라 바야데르’. “예컨대 ‘돈키호테’의 천방지축 처녀 ‘키트리’라면 더 귀엽고 요염해지려 노력해야 하지만, 니키아는 순수하고 겸손하면서도 위엄 있고 심지가 굳은, 내면의 강함을 갖춘 여성으로 해석했어요.” 그는 “박세은 ‘니키아’ 혼자가 아니라 김기민 ‘솔로르’와의 무대 위 ‘화학 결합’을 더 기대해달라”고도 했다. “둘 다 스토리텔링과 작품 해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우리의 생각과 해석이 춤으로 합을 맞춰 시너지가 일어나면 저부터 울컥할 것 같아요.”

◇”연습실에 한강 라면 기계가!”

14년 전 국립발레단은 오페라극장 5층 좁은 연습실을 썼다. “그땐 샤워실도 탈의실도 좁고 열악했어요. 근데 지금 새 건물 연습실은 너무 넓고 좋은 거예요. 체력단련실, 마사지실도 멋지고. 무엇보다 연습실에 ‘한강 라면 기계’가! 무용수한텐 시간은 금이거든요. 지금 국립 무용수들은 너무 좋겠다 생각했죠, 하하.” 그는 “근 7~8년 한국 올 때 마다 한예종, 세종대 등에서 원포인트 레슨 클래스를 했는데 그때 가르쳤던 친구들이 다들 국립발레단에 들어와 있어 놀랐다”고도 했다.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 춤추는 느낌이에요.”

박세은은 이번에 21개월 된 딸 지안을 데리고 둘이 한국에 왔다. “프랑스에선 일하며 아이도 다 돌봐야 했는데 여기선 부모님이 봐주셔서 마음이 정말 편해요. 지난 일요일엔 부모님과 아이가 예술의전당 분수대 앞 잔디밭에서 쉬고 있었는데, ‘라 바야데르’ 포스터를 보고 ‘엄마!’ 하더래요. ‘엄마 발레 갔어’ 하면 투정도 안 부린다니 너무 기특하죠?”

◇발레는 부족함 찾는 겸손한 예술

박세은에게 “발레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예술”이다. “가장 큰 위험은 ‘나는 잘한다’ ‘나는 스타다’ 하는 생각이에요. 쉼 없이 내가 부족한 걸 계속 찾아야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는 “나도 기민이도 전통은 전통대로 물려받되, 거기에 내 색깔을 더할 수 있길 꿈꾼다”고도 했다. 박세은의 ‘롤 모델’은 전설적 무용수·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리오페라발레의 에투알 노엘라 퐁투아(81). “분명 프랑스의 색감이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심장으로 춤을 추는 발레리나예요. 꾸미지 않는 순수함, 고귀한 기품, 풍부한 감정, 이 세 가지가 제겐 가장 중요해요. 노엘라 퐁투아는 어떤 춤에도 이 세 가지를 담았죠. 그분의 춤을 물려 받아 박세은의 색깔을 더하고 싶어요.”

박세은은 내달 8일 세계 동시 개봉을 앞둔 아이맥스 상영용으로 제작한 파리오페라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 실황 영화에도 주역으로 출연했다. 한국 관객은 내달 4일 서울 상영화에서 아이맥스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된 박세은의 모습을 월드 프리미어로 만나게 된다. 박세은은 직접 무대 인사도 할 예정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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