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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수사로 미제 된 ‘軍 염순덕 상사 사망사건’...法 “국가 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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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 경찰의 부실 수사로 인해 미제로 남았던 고(故) 염순덕 상사 사망 사건에 대해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조선일보

서울중앙지법.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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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7부(재판장 손승온)는 염 상사의 아내와 자녀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난 18일 “국가는 총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6년여 만이다.

이 사건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육군 부사관으로 임관한 염씨는 34세이던 2001년 12월 11일 경기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소속 군수담당관으로 근무하며 당일 부대 회식에 참석했다.

부대 회식 이후 염씨는 같은 부대 준위 B씨(당시 27세),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중사 C씨(당시 30세) 등과 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오후 11시쯤 나와 귀가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가격 당해 숨졌다.

헌병대는 뺑소니 사고로 염씨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으나, 경찰이 염씨가 발견된 곳 근처에서 그의 피가 묻은 대추나무 가지(길이 59cm)를 발견하면서 이는 살인사건으로 전환됐다.

또 경찰은 염씨가 변사체로 발견된 현장 인근 도로변에서 피묻은 담배꽁초 2개를 수거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정 결과 여기서 B·C씨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하지만 헌병대가 “사건 당시 당구를 치고 있었다”는 이들의 진술을 받아들이고, 국과수 감정 결과의 효력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이후 수사기관은 염씨를 살해한 도구로 추정된 대추나무 가지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분실했다.

그러다 이 사건은 2015년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2016년 재수사 대상이 됐다.

경찰은 사건 당시 B·C씨의 알리바이가 조작된 사실 등을 확인하고 이들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했다.

C씨는 염씨를 향해 직접 도구를 휘두른 인물로 지목됐는데, 수사가 재개되자 2018년 2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수사 재개 이후 포털사이트에 ‘살인사건’ ‘공소시효’ ‘미제살인사건’ 등의 단어를 검색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한 C씨와 달리 B씨는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으나 검찰은 피의사실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며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염씨의 유족은 2018년 9월 “고인이 B·C씨에 의해 살해됐음에도 부실 수사로 오랜 기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보훈보상 대상자 인정도 지연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 측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되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은 집안의 가장이 살해됐음에도 어느 누구로부터도 사죄 및 합당한 배상을 받지 못했고,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유력 용의자들이 발견됐음에도 초동수사 과정에서의 증거확보 미흡 등으로 인해 끝내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현저히 부당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로 인해 원고들은 막대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등 피고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초동수사 부실로 인해 살해 원인 등이 규명되지 않아 원고가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될 자격이 있음에도 대상자로 인정되지 않거나 그 인정이 지연될 가능성 역시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족 측은 염씨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으나, 보훈심사위원회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사망했다는 구체적·객관적 입증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유족은 이와 관련해 보훈보상 대상자 요건 비해당결정 취소소송도 진행하고 있는데,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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