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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기자수첩] 경영권 분쟁 이정표가 될 금감원의 ‘고려아연 유상증자’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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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금융감독원 공시심사실이 다시 바빠졌다. 공시심사실은 상장사가 분할하거나 유상증자를 할 때 시장에 투자 위험을 제대로 고지했는지 따져보는 부서인데, 올해는 유독 바쁘다. 두산그룹에 이어 고려아연이 폭탄을 던지면서다.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유상증자는 상장사가 자금이 필요할 때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것으로 일반적인 재무 활동 중 하나다. 문제는 고려아연은 꼭 이런 케이스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현 경영진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지분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번 유상증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주식 수를 늘려 MBK파트너스의 지분율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 금감원은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진행했다.

이날 브리핑에 따르면 금감원이 고려아연의 증권신고서를 심사할 때 유의 깊게 들여다볼 점은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유상증자의 방법이다. 고려아연은 일반 공모를 택했다. 주주가 아니어도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법상 아주 제한적일 경우에만 주주 배정 외의 다른 방법의 유상증자를 허락하고 있는데, 일반 공모는 조금 다르다. 자본시장법상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일반 공모 방법의 유상증자를 단행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려아연의 결정에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하나 더 따질 것이 있다. 바로 일반 공모의 취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 공모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평하게 청약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라며 “(고려아연이)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청약자별 한도다. 고려아연은 특정 투자자가 새로 발행될 주식을 싹쓸이할 수 없도록 투자자마다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주식을 제한했다. 금감원 관계자가 고려아연이 청약 기회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평하게 줬는지 따지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려아연의 청약 한도는 자신과 특별 관계자를 포함해 총 공모주식 수의 3%(11만1979주)다. 과거에도 청약자별 한도를 제한한 사례가 있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회계 담당 부원장은 “(고려아연이 청약자 한도를 제한한 건) 못할 것을 한 건 아니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함 부원장의 발언에 이승우 금감원 공시·조사 부원장보는 “기존에도 청약자별 제한은 있었는데, 고려아연이 다른 것은 특별관계자까지 포함했다는 점”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 부원장보는 “특별관계자를 포함해 3%로 한도를 제한하는 건 추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청약자별 한도는 문제 없다’라는 오해가 번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청약자 개인이 아닌 특별관계자까지 포함해 한도를 제한하면 투자자의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일부 제한하게 된다. 가령 A와 B가 특수관계인 상태에서 A 홀로 3%를 청약하면 B는 유상증자에 참여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돼서다.

이미 법원은 청약자의 한도를 과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가 KCC와의 분쟁 과정에서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청약 한도를 1인당 300주로 걸었는데, 법원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금감원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각론이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의 내용 중 어떤 것을 문제삼아 정정을 요구할지가 핵심인 것이다.

유상증자의 방법과 한도를 모두 지적했다면, 앞으로 고려아연 식으로 경영권 방어를 하는 것은 제한될 것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에 대해서만 문제 제기한다면 제2의, 제3의 고려아연이 나올 것이다. 일례로 유상증자의 방법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한도만 지적했다면 향후 경영권 분쟁을 겪는 회사는 한도를 두지 않으면서 대규모 일반 공모를 진행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 법이 정한 권한 내에서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재계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어느 정도는 고려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선다. 모두가 주목하는 고려아연의 유상증자에 대한 금감원의 판단은 이달 13일 이내에 발표된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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