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침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 세워진 ‘기후위기시계’에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이 4년 259일 17시간 48분 17초가 남았음을 알리고 있다. 남은 시간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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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259일 17:48:17’
지난 5일 오전 7시11분,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에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마주친 ‘시계’에서 째깍째깍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시계가 긴박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시간은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입니다. 시계 앞에 놓인 표지판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면 폭염은 8.6배, 가뭄은 2.4배, 강수량은 1.5배 증가하는 등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후위계시계’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시계는 지난 4월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국회 내 좌측 구석에 설치됐다가 “22대 국회를 기후국회로 만들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9월4일 국회 한가운데인 본청 건물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기후문제에는 여야가 없다”며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왼쪽 다섯번째)을 비롯한 여야 원내대표 및 참석자들이 지난 9월4일 오전 국회에서 기후위기시계 이전 제막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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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 닷새 뒤인 9월9일, 우 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윤리특별위원회 등과 함께 기후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22대 국회에선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 논의가 이뤄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21대 국회에서도 기후특위가 설치되긴 했습니다. 2022년 말 설치돼 ‘한시적’으로 가동됐던 기후특위는 ‘맹탕’이란 지적을 받고 문을 닫았습니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를 불러 모아 기후 문제를 논의하도록 했으나, 법안이나 예산 심의권이 없는 ‘힘없는’ 임시 특위라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 장관들조차 기후특위 회의에 잘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기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도 국회가 손놓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자, 여야 모두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있는 기후특위 상설화를 공약했습니다. 지난 2월27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가 중요한 점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결단을 책임지고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기후특위 상설화를 포함한 기후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발 더 앞서 지난해 11월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기후특위 상설화를 검토하자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27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북카페에서 열린 기후 미래 택배 공약 발표회에서 국민택배 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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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은 물론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등 국회 내 ‘힘’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동의한 ‘상설 기후특위’는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5일까지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4일 제막식 행사 사진을 보면, 기후위기시계는 ‘4년 321일’이 남았다고 기록돼 있는데요. 행사도 하고, 합의도 했지만 62일이 지나는 동안 정작 이행되진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박지혜·허영 민주당 의원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기후특위에 법안 및 예산심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아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특위 논의를 잘 알고 있는 국회 관계자는 “기후특위가 여야 ‘우선 과제’에서 상당히 밀려있는 상황”이라며 “기후특위 설치의 당위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협의가 필요한데 우선 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논의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여당 공천 개입 의혹 등이 정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특위 설치를 위한 협상은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부터)와 우원식 국회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9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손을 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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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전문가들은 늦어도 올해 연말까지는 기후특위가 출범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팀장은 “지금 국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기후위기 대응이고, 정치적으로 밀릴 사안이 전혀 아니”라며 “여야 간 여러 싸움도 있고 정쟁도 있을 수 있는데 우선적으로 기후특위 논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윤세종 플랜 1.5 정책활동가 역시 “다른 정치적 사안과 별개로 ‘민생법안’이라고 생각하면 이만큼 중요한 게 없다”며 “이걸 최우선으로 해서 정기국회 끝나기 전에 이것만큼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지난 8월29일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 목표에 대해 어떠한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고 있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헌법 불합치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법 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탄소중립기본법 보완을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안에 여러 부처가 함께 들어올 수 있는 기후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게 기후활동가들의 입장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1일 오후 국회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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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후위기시계’를 지나쳐 국회 소통관으로 출근한 뒤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물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대표의 만남에 진전이 있느냐”고요. 지난달 21일, 이 대표가 한 대표에게 민생 현안을 논의하자며 ‘2차 대표 회담’을 제안했고 한 대표가 곧장 ‘좋다’고 화답한 바 있습니다. 회담이 이뤄진다면 민생과 직결된 기후특위 설치 논의가 혹시라도 이뤄지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오는 11일부터 22일까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가 열립니다. 198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정부대표단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야 대표도 ‘말’ 대신 ‘행동’에 나서길 기대해봅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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