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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잊혀져 버린 정의, 그들을 기억하며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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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투쟁과 반독재 투쟁으로 점철된 생애를 담은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의 작가 김학철.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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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였던 고 김학철(1916~2001)의 인생을 다룬 연극 ‘최후의 분대장’을 지난주에 보았다. 김학철 작가의 파란만장한 도정을 헤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던 충만한 시간이었다. 이 연극을 기획한 연출가 김재엽은 김학철의 삶을 “한국 현대사의 사각지대에서 잊혀지고 말았던 정의로운 사람들의 보고”라는 맥락에서 파악한다. 과연 그렇다. ‘조선의용군’으로 상징되는 치열한 항일 투쟁을 거쳐 사회주의의 이상을 간직하면서도 중국정권과 북한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김학철의 인생은 그 투철한 의기만큼 수모와 고난의 세월이기도 했다. ‘격정시대’, ‘항전별곡’, ‘최후의 분대장’, ‘20세기의 신화’는 이처럼 담대했던 김학철의 삶과 문제의식을 오롯이 반영하는 작품이다.



한평생을 한인 문학 연구에 바친 고 오무라 마스오 교수는 생전에 “시인 윤동주와 소설가 김학철은 노벨 문학상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김학철의 작품은 아직 서구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그의 문학세계는 노벨 문학상이라는 잣대로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동아시아 현대사의 독특한 슬픔과 저항, 유머, 형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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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다룬 장편소설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 소설가가 2018년 4월21일 오후 일본 도쿄 호쿠토피아에서 제주도 4·3 70주년 추모행사에서 ‘제주도 4·3 항쟁의 정의를 이야기하자’라는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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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 작가 김석범의 문학도 유사한 맥락에 놓여있다. 제주 4·3의 비극을 밀도 깊게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대하소설 ‘화산도’ 역시 아직 서구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12권에 이르는 분량도 엄청나지만,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저항, 사유, 전통, 풍속, 인문지리, 역사가 알알이 박혀있는 이 작품의 서구어 번역은 장구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테다. ‘화산도’가 서구어로 번역되었다면 김석범 작가가 응당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거라는 주장은 이미 일본과 한국의 몇몇 학자와 작가에 의해 이루어진 바 있다. 김석범의 작품세계 역시 노벨 문학상이라는 시좌만으로는 그 진면목이 포착되지 않는 고유하고 우뚝한 문학적 성채다.



문제적인 사실은 이런 김학철과 김석범의 문학세계가 정작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이해·수용·연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부터 발간되고 있는 ‘김학철 문학전집’ 전 12권은 현재 여섯권이 출간되었지만 언제 완간될지 기약이 없다. 김석범 작가의 이해와 연구에 꼭 필요한 소설과 산문 다수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최근 일본의 월간 문예지 ‘스바루(すばる)’ 2024년 8월호에 신작 ‘만덕의 유령’을 발표한 99세의 현역 작가 김석범에 관한 연구와 조명은 그 문학적 가치에 비하면 꽤 부족한 편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는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김학철과 김석범의 작품세계가 바로 이런 영역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고귀하면서도 드물고,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수업 시간에 늘 ‘소년이 온다’를 다뤄왔기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각별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한국문학을 읽으며 작가로 성장했다는 한강 작가의 발언은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서구문학과 노벨 문학상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중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이제 노벨 문학상이라는 축제와 열광이 지난 이후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 시간은 독서와 미디어, 비평의 쏠림 현상에서 탈피해, 김학철이나 김석범처럼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드물고 고귀한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과 이어져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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