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총재를 겸하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7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중의원 선거 조기 결과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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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세계 안정을 위협하지 마라.’
미국 대선 결과가 정해진 지난 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설 제목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을 바라보는 일본의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준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전세계 외교·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의 지형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 정부로선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 뒤 “말을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정도로만 평가할 만큼 낯설어하는 상대다.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당장 경제 분야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예고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일률 60% 관세 부과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10∼20%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취임 뒤 이 공약을 실행에 옮기면 다시 무역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미국의 과도한 관세 인상에 맞서 중국과 유럽연합(EU)이 보복 관세를 발동한 적이 있다.
전기차에 대해서는 중국산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해서도 최대 200%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닛산, 혼다 등이 멕시코 공장을 대미 수출기지로 삼는 일본 기업들로서는 당장 내년부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자간 협상 방식 대신 양자 간 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률 관세 부과에 대해서도) 실제 그럴 생각이 없지만, 이를 재료로 각국과 양자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강하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신문은 “어쨌든 미국으로 많은 자동차 등을 수출하는 일본은 추가 관세에 타격이 커서 힘든 협상을 강요당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본제철이 인수를 코앞에 뒀던 미국 최대 철강기업 유에스(US)스틸 매각에도 절대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미국 수출품보다 수입품의 관세가 높으면, 같은 세율이 될 때까지 미국 관세를 인상하는 상호무역법(USRTA) 도입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고립주의, 양자 간 거래를 축으로 하는 ‘트럼프 방식’에 맞춰 머리 아픈 수 싸움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정부 시절,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맞서겠다’는 공동 성명과 함께 공동 군사 역량 강화에 힘을 써왔다. 두 나라가 무기를 공동 개발·생산하는가 하면, 주일 미군을 인도·태평양사령부 예하의 ‘통합군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위대에는 통합작전사령부 신설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방위비 증가와 군사력 강화를 본격화하던 일본으로선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서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을 축으로 일본, 한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연계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대응 태세를 갖췄던 틀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제 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방위비 증액이나 미국산 장비 구입 등을 무리하게 요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시바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트럼프 1기 정부를 상대했던 각료 경험자나 참모 싱크탱크 등을 끌어모아 ‘트럼프의 귀환’에 대비하고 있다. 한 외무성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트럼프 1기 때, (미-일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개인적 역량이 컸다”며 “미-일 관계를 관리해 나가기 위해 (경험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선 외교에서도 개인적 친분이 반영되는 등 독특한 스타일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이시바 총리가 제대로 된 협상을 벌일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8일 “자유분방하고 충성심을 요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데 서툰 이시바 총리의 정상외교에 불안감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외무성 안에서는 “4년을 버틸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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