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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윤수일 구축 아파트도 좋아요, 이제 42년 넘어 재건축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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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아파트’ 가수 윤수일 인터뷰

“로제의 신축 아파트도 좋지만 윤수일의 구축 아파트도 좋다!”

최근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듀엣곡 ‘아파트(APT.)’와 가수 윤수일이 1982년 발표한 노래 ‘아파트’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마다 달리는 댓글이다. 로제의 아파트가 미국 빌보드 차트 핫100에서 한국 여성 가수 신기록(8위)을 세우는 사이 덩달아 국내 노래방 차트에선 윤수일의 아파트가 평소 350위에서 11위로 성큼 올라왔다. 42년 간격을 사이에 둔 두 곡이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두 사람의 노래를 이어 붙인 패러디 영상이 쏟아지고 “은마아파트보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먼저 재건축되다니…” “재건축 시행사 브루노 마스, 시공사 로제” 등 코믹한 댓글이 이어졌다. 13일 오후 6시에는 후배 가수 장범준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리메이크한 음원이 공개되는 등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

11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윤수일(69)은 “여러 댓글 중에서 ‘40년을 뛰어넘은 재건축 조합장’이란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실제 아파트 재건축도 30~40년 주기다. 곡이 되살아난 시기와도 맞물리지 않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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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일과 로제의 곡을 이어붙여 인기를 끈 패러디 영상 장면. /틱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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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 사이에선 로제의 노래 도입부에 윤수일의 아파트에 나오는 ‘띵동띵동’ 초인종 소리를 합친 이른바 노래 재건축(리메이크) 영상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윤수일은 이에 대해 “옛날 아날로그 시절에 쓴 초인종 소리가 최신곡에 잘 어울릴까 반신반의했는데, 패러디 영상들의 믹싱이 생각보다 더 훌륭하더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평생 음악을 한 내가 봐도 로제의 아파트는 리듬, 멜로디가 손색없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며 “해외 공연을 갈 때마다 K팝을 이끄는 후배들의 인기를 깊이 체감해 왔는데, 그 인기를 ‘아파트’ 같은 한국적 주제에 결합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윤수일은 로제의 아파트를 듣고서 “도입부에 술 게임에서 따온 ‘아파트~ 아파트~’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건드린 방식을 주목했다”고도 했다. 그 역시 초인종 소리를 노래 도입부에 넣은 것이 “발매 당시 큰 화젯거리였다”고 했다. 그는 “노래에서 갑자기 띵동거리니 누가 왔나 해서 문을 열러 나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누구나 아는 정감 가는 소리로 귀를 딱 사로잡으니 곡의 인기를 더하는 데 톡톡한 효자 역할을 했다”고 했다.

초인종 소리는 사랑 노래가 주를 이루는 가요계에서 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노래가 어떻게 해야 잘 먹힐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넣었다고 했다. “지금은 천차만별이지만, 당시는 모든 아파트가 똑같은 초인종 소리를 썼어요. 한번 들으면 단번에 아파트를 상상할 거라 생각했죠. 청계천 철물점에서 직접 초인종 벨을 사다가 녹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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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이용해 만든 영상. 윤수일과 로제의 곡을 이어붙인 패러디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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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일의 아파트가 로제의 아파트 덕에 ‘재건축’되긴 했지만, 아파트는 이미 한국 대중문화에서 오랫동안 핵심 키워드였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발매 후 10여 년간 노래방 차트 1위에 군림했다. 드라마 수리남(2022),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등 이 노래를 주요 장면에 쓴 작품도 최근까지 이어졌다. 가사는 친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들려준 이별 이야기를 뼈대로 삼아 썼다. 그는 “친구가 이별한 후 헤어진 여자의 아파트를 찾아간 사연을 들려주며 엉엉 우는데 정작 난 가사 받아쓰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윤수일은 “아파트처럼 삶과 시대의 흐름이 묻어나는 공간은 없다”고 했다. 그의 노래 역시 우리의 주거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 만들어졌다. 가사 속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만날 수 있던 ‘너의 아파트’는 윤수일이 자주 걸었던 잠실대교와 인근 잠실 지역 아파트 모습을 담았다. 그는 “당시 잠실과 천호동 일대가 고수부지 갈대밭이었고, 갈대가 춤추는 사이로 아파트가 섰고 또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이 전경을 그린 노래도 필요하겠다 싶었다”고 했다. “신문을 펼쳐도, TV를 틀어도 ‘아파트가 생긴다’ ‘값이 폭등한다’ ‘청약에 인파가 몰렸다’ ‘떴다방이 왔다 갔다’…. 그런 이야기가 항상 뉴스로 나오던 때였죠.”

청년 윤수일과 서민층에게 아파트는 희망인 동시에 외로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주한 미군 출신 아버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열여덟 살에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고, 남산의 시민아파트에서 하숙하며 가수를 꿈꿨다”고 했다. 3년 연습 끝에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던 밴드 골든 그레이프스의 막내로 들어간 그는 “가수로 성공했을 땐 동부이촌동 아파트로 이사 갔고, 현재는 10년째 가슴이 뻥 뚫리게 바다가 보이는 부산 아파트에 산다. 우리 인생과 함께 이토록 오래 동행하는 요소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의 노래 아파트에 전하는 정서와 쓰임도 많이 바뀌었다. 친구의 이별 노래로 쓰인 쓸쓸한 노래가 대학의 응원가, 월드컵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경기에 쓰이는 노래로 바뀌었다. 아파트 안에 살고 있는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윤수일과 그의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국제다문화협회 공동대표, 다문화가족 홍보 대사 등을 지낸 그는 “소외감을 노래로 위로받던 제 어린 시절에 비해 요즘은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제 외모도 이젠 흔한 게 됐죠. 요새 아이돌들이 전부 내 얼굴 닮았잖아요. 하하!”

윤수일은 최근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새 음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신곡은 록 발라드와 일명 ‘뽕끼’가 적절히 섞일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와 함께 그의 또 다른 대표곡으로 꼽히는 ‘황홀한 고백’은 한국식 뽕끼 멜로디에 서양식 고고 리듬을 섞은 ‘트로트 고고’ 계열. 그의 첫 히트곡 ‘사랑만은 않겠어요’도 마찬가지다. 그는 출발이 그룹 사운드였던 만큼 “내 음악적 뼈대와 고향은 록”이라면서 “일명 ‘뽕록’으로 불리는 노래 스타일의 인기를 주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도시의 감성을 노래한 ‘시티 팝’의 원조로도 평가된다.

그는 “저 역시 어린 시절 비틀스 음악에 가슴이 뛰어 노래를 시작했지만, 자주 즐겨 듣는 노래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였다”면서 “우리는 된장, 김치와 같이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와 DNA를 갖고 있다. 요즘 ‘미스 트롯’같이 트로트 방송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처럼, 소위 ‘뽕끼’가 들어간 노래가 오래간다.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제 노래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꼭 닮아 같이 갔어요. 로제의 아파트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담아 냈듯이, 저는 이제 또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을 겁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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