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적자에 4분기도 ‘깜깜’
전기차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에코프로그룹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면서 내년 실적도 불안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때 2차전지 열풍을 주도하며 지주사 에코프로 주가가 100만원을 넘어 ‘황제주’ 반열에 올랐지만 최근 급락하는 등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에코프로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에코프로비엠 오창공장. (에코프로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에코프로 실적 부진
3분기 영업손실 1088억원 달해
에코프로는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5943억원, 영업손실 108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4개 분기 연속 적자다. 적자 규모도 전분기(546억원)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9%가량 감소했다.
계열사별로 보면 양극재를 제조하는 에코프로비엠 실적 부진이 두드러진다. 3분기 영업손실은 412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전분기 대비 36% 감소한 5219억원에 그쳤다.
에코프로비엠은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양극재와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를 삼성SDI, SK온 등 주요 배터리 업체에 공급한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 주문을 줄인 탓에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판매량도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이 여파로 에코프로비엠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11월 6일 종가 16만3100원). KB증권은 에코프로비엠 목표주가를 기존(27만원) 대비 22% 내린 21만원으로 제시했다.
다른 계열사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전구체를 제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의 3분기 매출은 659억원으로 전분기(667억원)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영업손실이 385억원으로 전분기(37억원 손실) 대비 적자폭이 늘었다. 전구체 판매량은 전분기 대비 21% 증가했는데 판매 가격이 1.5% 감소했기 때문이다.
실적 부진에 내몰린 에코프로는 주주에 사과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에코프로 측은 “광물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전방 산업이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아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게 돼 주주 여러분께 송구하다. 기술 경쟁력 제고, 원가 혁신 등을 통해 삼원계 배터리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위기에 내몰린 에코프로는 반전의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까. 내부적으로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의 리더십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에코프로는 최근 이사회를 개최해 이 전 회장을 상임고문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 고문은 경영 일선에 복귀하자마자 발 빠르게 계열사 유상증자, 합병, 신규 투자 등 주요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에코프로그룹은 최근 에코프로에이치엔의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에코프로에이치엔은 온실가스 감축 솔루션, 반도체 공장 오염물질 제거 사업을 하는 친환경 솔루션 업체다.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2차전지 소재 등 신사업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2000억원 자금이 조달될 경우 전해액 첨가제 생산설비 건축에 400억원, 양극재 소성용(열처리용) 도가니 첨가제 시설 투자 200억원 등 600억원을 2차전지 신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충북 진천군에서 대지면적이 5만㎡ 규모인 초평 사업장을 준공했다. 2차전지 수명을 증가시키는 첨가제인 도펀트 생산에 나선다.
이뿐 아니다. 이동채 고문은 세계 1위 전구체 기업인 중국 GEM과 손잡고 인도네시아 통합 양극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 충북 오창 에코프로 본사에서 허개화 GEM 회장을 만나 양극 소재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협업을 약속했다.
GEM은 인도네시아에서 니켈 15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제련소를 운영한다. 전기차 캐즘으로 원재료 비용 절감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에코프로가 핵심 광물인 니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삼원계 배터리에서 니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니켈을 얼마나 저렴하게 조달하느냐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좌우된다.
에코프로는 하이니켈 양극 소재 세계 1위 업체다. 이 고문은 배터리 소재에서 우위에 있는 두 기업이 협력해 제련 → 전구체 → 양극재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 생산비용을 절감하겠다는 포부다. 인도네시아에서 공급받는 니켈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2차전지용 전구체 원료인 황산니켈로 전환한 뒤 전구체로 제조해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이엠 등 양극재 생산 업체에 공급한다.
그는 경영 복귀 후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과잉 생산설비로 인한 캐즘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고 에코프로도 현실에 안주하면 3~4년 뒤에는 사라질 수 있다”며 “GEM과 함께 구축하는 통합 밸류체인이 배터리 캐즘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프로비엠이 최근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도 GEM과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 양극재 프로젝트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최근 3360억원 규모의 만기 30년짜리 신종자본증권을 사모 방식으로 발행했다. 에코프로비엠은 조달 자금 중 2200억원을 채무 상환에, 나머지 1160억원을 운영 자금에 활용할 계획이다.
에코프로비엠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발행할 때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최근 전기차 시장 둔화로 업황 회복 시점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에코프로비엠은 최대한 재무 부담을 낮추면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핵심 광물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열사 수익성 개선은 더 시급한 당면 과제로 손꼽힌다. 최근 초고순도 탄산리튬과 리튬니켈산화물을 제조하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에코프로씨엔지 합병을 추진하는 것도 계열사 수익성 개선을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2분기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은 560억원, 에코프로씨엔지는 207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에코프로 계열사 중 손실폭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순손실을 내온 두 회사를 합친다고 해서 얼마나 수익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생산 효율성 증대, 신사업 진출 같은 적자 타개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동채 고문, 회장 복귀하나
실적 부진에 주주 반발 우려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은 4분기뿐 아니라 내년 실적도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온으로 보내는 NCM 수요 회복 시기가 지연되는 가운데, 그나마 선방해온 삼성SDI NCA 구매량이 유럽 전기차 시장 부진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시장 회복 지연으로 올해 4분기에도 전분기 대비 유의미한 판매는 어려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경북 포항에 4732억원을 투자해 추진하는 ‘CAM9’ 신규 공장 증설을 올해 말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전기차 수요 둔화로 완공 시기를 2026년으로 2년 연기했다”고 밝혔다.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이 고문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지만 아직까지 경영 보폭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임고문 자리를 벗고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시 에코프로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 고문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취업 제한 기준에 걸리지 않아 경영 복귀에 걸림돌은 없다. 다만 에코프로가 계속해서 실적 부진에 시달릴 경우 그의 회장 복귀를 두고 주주 반발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