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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비치=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4.11.15. /사진=민경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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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인플레이션감축법)가 폐지된다면 사실상 사기극이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된 후 인수위원회가 실제로 IRA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IRA가 미국의 리쇼어링을 위한 '당근' 격으로 마련된 일종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인센티브를 줄테니, 미국에 공장을 지어달라"는 요청이었고, 글로벌 제조업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까지 담았다.
이같은 미국의 요청과 약속에 적극 호응한 게 K-배터리였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미국 생산거점을 위해 쏟아부은 돈만 5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한 결과였지만, 막대한 규모의 IRA 보조금 역시 빠른 투자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배터리 업계에 "IRA 보조금을 획득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북미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트럼프의 재선으로 상황이 변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권위주의 개도국도 아니고 미국이 이렇게 동맹국 기업들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분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행히 K-배터리는 새로운 해답 도출을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ESS·우주·로봇·조선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배터리협회는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 법인세·전기료 인하 등이 오히려 K-배터리에 유리하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다 핵심적인 대응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에 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완전히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차전지 시장의 핵심은 전기차에 있고, 가장 성장성이 큰 시장은 북미에 있다. 북미에서 사업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K-배터리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내에서 아웃리치, 여론전 등을 총동원해 IRA의 폐지 혹은 대폭 수정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민관이 손을 잡고 이같은 외교전을 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공략 대상은 분명하다. 공화당에서만 하원의원 18명이 IRA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K-배터리가 막대한 돈을 투자한 주들 역시 우리 기업에 우호적이다. K-배터리는 그동안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애리조나·켄터키·테네시·인디애나 등 공화당 텃밭, 혹은 경합주 지역에 투자를 집중해왔다. K-배터리와 복합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주정부를 K-배터리의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고, 의회 내 IRA 반대 세력을 포섭·확대해 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트럼프를 '스트롱맨'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시진핑이나 푸틴이 될 수 없다. 임기는 4년밖에 안 되고, 모든 정책 처리에 있어서 의회의 동의가 필수다. 우리는 트럼프 1기 기간을 거쳤다. 그렇다고 미국 내 그린 산업이 뒷걸음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경험했다. 탈탄소와 전기화는 트럼프 혼자서 되돌리기에는 너무 거대한 흐름이다. 이런 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K-배터리의 10년 뒤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외교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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