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통령실, 추경 편성 검토
尹대통령, APEC·G20 마치고 귀국 - 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와 20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남미 순방을 마치고 21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해 정진석(왼쪽 둘째) 비서실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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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현재 국회가 심의 중인 새해 예산안과는 별개로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것은 출범 후 ‘건전 재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온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 기조 전환을 의미한다. 건전 재정 기조를 폐기하진 않지만 경기 부진과 소득 양극화 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내수 진작과 취약 계층 지원 등을 위해 유연한 재정 정책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여권 일각에서 재정 확장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제기됐다”고 했다. 여권 핵심부에선 윤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양극화 타개를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정부 경제팀 개편을 검토하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픽=김하경 |
현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한 차례 추경을 편성한 뒤로 2년 6개월간 한 번도 추경을 추진한 적이 없다. 첫 추경도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권 교체로 인한 정책 변화를 예산에 반영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 추경은 윤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 손실 보상’ 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원포인트 추경이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추경을 10차례 편성한 것과 비교해 ‘추경을 유달리 멀리하는 정부’란 말이 나왔다.
현 정부는 정치권 일각에서 추경 편성 필요성을 제기할 때마다 ‘건전 재정’을 내세워 선을 그어왔다. 재정 투입을 통해 경기 부진에 대응하자는 주장에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 때 훼손된 재정 건전성을 복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여권 일각에서도 추경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당시 대통령실 일부 인사도 이런 주장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위한 인위적인 추경은 하지 않는다”는 정부 경제팀 논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경제팀원들 사이에선 “건전 재정은 임기 5년 전체에 걸쳐 달성해야 할 재정 정책 목표이지 정책을 둘러싼 환경과 무관하게 고수해야 할 도그마가 아니다”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대선 캠페인에 참여한 한 경제학자는 “관료 출신이 중심이 된 현 정부 경제팀이 앞세운 ‘건전 재정’은 구호에 가까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지원 예산, R&D(연구·개발) 예산, 신재생에너지 지원 예산 등 일부 사업 예산을 재조정하고 재정 지출 증가 속도를 떨어트리기는 했다. 그러나 전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적자 재정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않았다. 매년 거둬들이는 것보다 많은 돈을 쓴 것이다. 정부는 재정 적자가 지출 증가보다는 법인세 등 세수의 일시적인 부진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부가 실제로 지출 규모를 전년도보다 줄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복합 위기로 인한 내수 부진 등 경기 침체, 소득 양극화 심화 등으로 인해 더 이상 긴축 기조를 고수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대통령실 안에서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뒤로 대내외 여건이 급변한 것도 추경 검토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1.4%로 부진했던 경제 성장률이 올해는 2%대 후반으로 회복되고, 수출은 물론 코로나 이후 침체했던 내수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기업 실적도 개선되면서 세수 부족 문제도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내수 회복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이 가중돼 수출 여건도 크게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올해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을 웃돌 것으로 예상돼 불경기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적극 재정 정책을 펴야 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내년 초 별도 추경 편성을 검토하는 것은 정부 새해 예산안 편성 때 고려하지 않았던 여러 신규 사업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년 초 추경이 현실화할 경우 677조원을 지출하기로 했던 정부 새해 예산안보다 재정 지출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 적자 규모가 일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추경을 하더라도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는 식의 사업은 지양할 것”이라면서 “지출 대비 경기 부양 효과는 크면서 재정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한 사업을 집중 발굴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추경을 추진하면서 상속세 감세(減稅) 등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지만 상속세처럼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데 (감세했을 때)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큰 세금의 개편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상속세를 줄이면 노년층 자산의 청년층 이동을 활성화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추가경정예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아 확정된 연간 예산안에 대해, 나중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경정(更正·고침)하는 예산안. 원래 예산안에 있는 각 사업 예산을 늘리거나 줄이고, 새로운 사업 예산을 넣기도 한다. 주로 재정 지출을 원래 계획보다 확대할 때 쓰인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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