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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트럼프, 위기에 처한 아베 구했다”...도쿄 올림픽 개최 연기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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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35회>]

코로나 사태로 2020 올림픽 무산 직전에 트럼프가 전화

“1000% 도와주겠다” 며 아베에게 1년 연기 제안

일본은 미국의 어깨에 올라타 실리 챙기며 배후 조종

아베 " 주한미군은 동북아 안정 위해 중요”...철수 반대

“미국에 얹혀사는 처지, 기다리는(reactive) 자세에서 벗어나 일본은 우리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그 능력을 종합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플레이어(proactive player)로 일본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지난 22일 트럼프 2기의 대외전략을 주제로 열린 세종국가포럼에서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일본 도시샤대 교수는 이런 요지의 발표를 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기 때 8년간 재임하면서 ‘세계 평화에 선제적으로 기여하는 적극적 평화주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능력’을 제고해 왔다는 겁니다.

아사바 교수의 발언이 파격적인 자화자찬으로 느껴질지 수 있습니다. 저도 ‘적극적 평화주의’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베가 두 번째로 총리가 돼 8년간 재임한 시기에 일본이 외교안보 면에서 완전히 변했다는 것에는 이의(異議)가 없습니다. 이 시기는 생존 전략으로서 미일동맹의 진화를 위해 진력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부터 도쿄 특파원으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본이 미일동맹의 배후에서 미국을 조종, 끌고 나가는 측면도 있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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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20년 트럼프-아베 시대에 펴낸 미·일 동맹 발전 보고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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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동맹은 8년간 총리로 집권했던 아베가 제안하고, 트럼프 1기 때 브랜드화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 미일 동맹이 일방적인 미국 주도였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2021년 트럼프를 대선에서 꺾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후에도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에 내세워 활동 범위를 서쪽으로 지속해서 확장해 갔습니다. 일본은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아베가 고안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슬로건을 계속 사용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일본, 인도,호주 4국의 안보 협력체 ‘쿼드’의 사실상 사무국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요인 중의 하나는 트럼프와 아베의 브로맨스였는데,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사업가적 감각으로 도쿄 올림픽 연기 제안

2020년 초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와 아베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습니다. 아베는 2020년 5월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세계로 확산된 것이 사실”이라며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서 미국과 협력하면서 다양한 국제적 과제에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코로나 긴급사태를 해제하는 기자회견에서 격화되는 미중 갈등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국제사회 요구는 일본과 중국이 각각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책임 있는 대응을 취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그런 대응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미중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서로를 더욱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아베가 비교적 명확하게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중국을 견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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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무산될 뻔 했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일본 총리에게 1년 연기를 제안, 2021년에 열렸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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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엔 트럼프가 아베를 설득,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도록 해 “트럼프가 올림픽 문제로 위기에 처한 아베를 구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도쿄 특파원으로 저는 당시 매일 아침 도쿄에서 발행되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산케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는데, 닛케이가 3월 24일 자 1면 톱 기사에서 도쿄 올림픽 연기 배경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밀월(蜜月)’관계인 트럼프 조언이 아베의 연기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는 50분간의 전화 회담에서 “올림픽을 1년간 연기해야 한다.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보다는 1년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유의 ‘1000% 지지’ 표현을 써가며 ‘2021년 도쿄 올림픽’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어서 3월 16일 화상 통화로 이뤄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아베는 “도쿄 올림픽은 완전한 형태로 개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연기해서 개최하겠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밝힌 것입니다. 이 회의에서 영국의 존슨 총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찬성 견해를 밝혔습니다.다른 정상들도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아베는 올림픽 1년 연기가 결정되자마자 3월 25일 트럼프에게 전화해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미일 정상 간에 12일 만에 다시 이뤄진 40분간의 통화에서 트럼프는 “매우 현명하고 훌륭한 결정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트럼프가 제안해서 성사된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는 아베에게 나쁘지 않은 정치적 차선책(次善策)이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이 만약 전면 취소됐다면 그에게는 대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헤아리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국민의 실망감과 불만이 아베 정권을 향할 것은 자명했습니다. 아베가 불명예 퇴진하는 시나리오가 부각될 수도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대회 취소를 고려하는 IOC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업가적인 감각으로 일본과 아베를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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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4월 17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식사를 앞두고 찍은 기념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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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아베와 친분있는 인사를 주일대사에 지명

트럼프는 2020년 3월 16일 주일 미국 대사에 아베와 친분이 두터운 케네스 와인스틴 미 허드슨 연구소 소장을 지명하기도 했습니다. 와인스틴 지명자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아베와 여러 차례 만난 인물로 “역대 주일 미 대사 중 현직 일본 총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 지명됐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교도통신도 트럼프가 아베와 와인스틴의 관계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와인스타인은 1991년 보수 성향의 허드슨 연구소에 들어간 후, 2011년 소장이 됐습니다. 이어서 2013년 허드슨 연구소가 국가 안보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허먼 칸(허드슨 연구소 창설자) 상’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베에게 수여했습니다. 아베는 허드슨 연구소가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신설된 ‘일본 체어(석좌)’로 영입할 때 정부 예산으로 5억 6,000만 엔을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와인스틴에게 보답했습니다. 와인스틴은 미 의회에서 인준 절차가 지연되면서 일본에 부임하지는 못했으나 이는 트럼프와 아베의 브로맨스를 상징하는 또 다른 징표가 됐습니다.

◇주한미군 철수 반대한 아베

트럼프와 아베의 긴밀한 관계는 한국 관련 사안에 대해 아베가 트럼프를 대변(代辯)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2018년 10월 7일 아베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직전에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진 아베는 FT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의 하나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방안에 자신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미군의 한국 주둔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고 도 했습니다. 아베의 이 발언은 미일 두 정상이 대화할 때 북한 비핵화에 따른 주한미군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 및 국민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주한미군 문제가 처리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트럼프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정일을 만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 차례에 걸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P.S.

1. 아베-트럼프 때 더욱 견고해진 미일동맹은 바이든 행정부에도 계속됩니다. 일본 관점에서 미일 동맹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수는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입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0년 11월 당선 직후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 센카쿠 보호를 언급, 일본 열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외무성 고위 관리가 크게 만족하며 “100점 만점”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요미우리 신문 3면에 대서특필됐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누구도) 깰 수 없는(unbreakable) 미 ·일 동맹’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만이 위협받으면 양국이 공동작전을 펼치는 작전 계획도 만들어졌습니다. 2021년 창설된 미국 · 영국 ·호주의 3국 동맹 오커스(AUKUS)에 일본이 들어가 조커스(JAUKUS)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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