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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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4일 니카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단독으로 진행했다. 한국 정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은 일본 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의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 등을 이유로 추도식에 불참했다. 사도광산의 ‘강제성’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지 구체적인 합의 없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며 ‘굴욕 외교’ 논란을 낳을 때부터 예고된 파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이날 일본 정부·시민단체 인사들만 참석한 추도식에서 1940년대 사도광산에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가 있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에서라고 해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갱내의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곤란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추도사지만,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은 담기지 않았다.
외교부는 추도식 하루 전인 23일 “사도광산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제반 사정을 고려해,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제반 사정’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일본 대표인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력과 추도식·추도사 등에 강제동원 인정과 피해자 추도 내용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상황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쿠이나 정무관은 참의원으로 당선된 뒤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을 맞아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보도한 바 있다.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은 표면적으로 일본 정부의 ‘도발’ 탓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7월 강제동원 역사가 사실상 삭제된 상태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준 한국 정부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은 당시 사도광산 관련 시설에 ‘전체 역사’를 담겠다고 했지만 ‘강제동원’은 명시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중요한 건) 일본이 전체 역사 반영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매년 열기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을 성과로 내세웠다. 특히 추도식엔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하기로 했다며 “어음 대신 현찰을 받은 협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후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뜻으로 ‘감사’를 행사 명칭에 넣겠다고 요구하고 한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강제동원’이 빠진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결정됐다. 행사 주최도 일본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가 맡았다. 추도식에 참석할 정부 고위급 인사는 행사 이틀 전인 22일에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이 있는 차관급 극우 인사로 발표됐다.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약속’만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데 이어, 추도식 협상에서도 참석자나 추도사 등 내용 확인 없이 날짜부터 덜컥 합의하는 전략적 실수를 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워온 ‘한-일 관계 개선’의 상징에 형식적으로나마 흠이 나지 않도록 조급증을 부린 결과로 보인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전 주고베 총영사)는 “교섭 과정에서 전문적이거나 조직적으로 대응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포기하면서 대일외교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일본의 뻔뻔한 도발 앞에 윤석열 정부의 굴종외교 민낯이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며 “퍼주기 외교, 사도광산 협상이 ‘성과’라고 강변하더니, 결국 일본이 채워온 나머지 ‘반 컵’에는 조롱과 능멸만이 가득했다. 정부는 즉각 일본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고, 명확한 후속 조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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