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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교사의 공적기록물인데…‘의대 합격 생기부 10만원에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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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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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구매 문의 드립니다.” “○○뱅크 ☆☆☆으로 5만원 보내주시면 됩니다.”



지난 24일, 입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생기부 판매’ 게시글을 보고,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판매자에게 구매 문의를 남겼더니 돌아온 답이다. 대화명이 ‘상위권 의대생 입시자료’인 판매자는 계좌번호와 금액을 알려준 뒤, 서울지역 의대 학적증명서를 보내 자신의 신분을 증명했다. 거래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피디에프 파일로 온 생기부에는 개인정보는 지워진 채 고교 시절 수상 기록, 봉사활동 실적, 동아리 활동, 과목별 특기사항, 전 과목 성적 등이 30장 분량으로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12월은 고등학교 1·2학년 생기부 기록이 사실상 마감되는 시기다. 수험생들의 생기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입시 커뮤니티에는 ‘생기부 마감시즌 스카이·○○대 경영학과 합격 생기부 판매’, ‘30% 할인, ○○대 합격 생기부 판매’ 등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고교 재학생을 상대로 이미 합격한 선배들이 자신의 생기부를 팔고 있는 것이다. 구매자들은 “명문대생들의 생기부로 성공적인 활동 계획을 세우라”는 판매자의 부추김에 따라 생기부를 채우려고 구매하는 분위기다.



판매가격은 서울 소재 의대를 최상위권에 놓는 입시시장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수도권 소재 의대에 합격한 생기부는 10만~20만원에 달한다. 또 판매자가 질문에 답하는 등 일종의 컨설팅이 들어가면 30만원까지 치솟는다. 반면 서울 주요 대학의 공대·경영대는 2만~3만원가량이다. 생기부 자료를 사업화한 곳도 있다. 지난해 창업한 한 스타트업은 “명문대 합격생의 실제 생기부를 공급받아 수험생(학부모)이 열람”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대입 수시 전형에서 중요한 평가 자료로 활용되는 생기부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에서 작성하는 공적 문서다. 개인이 상업적 목적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해당 법의 취지를 벗어난 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 홍민정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는 26일 한겨레에 “(본인의 생기부 판매 행위를) 현행법에서 범죄로 규정하긴 어렵다”면서도 “생기부는 작성 주체가 교사인 공적 기록물이어서, 이를 자기 재산권으로 생각해 판매하는 건 법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법성을 떠나 입시에서 실질적 도움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의 한 진학지도 교사는 “입시철,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한 상술”이라며 “원칙상 생기부 작성은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에 따라 정규교육과정 이수 과정에서 학교 내에서 학생 주도로 수행한 활동 등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것을 참고해 교사에게 적어달라거나 바꿔달라고 할 수가 없고, 그럴 경우 입시 부정을 일으키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생기부를 정부24에서 발급받는 개인 자료로 볼지, 공공 기록물로 볼지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생기부 판매를)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진 않다”며 “법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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