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검 범죄수익환수팀 김지영·안제홍 검사
미등록 대부업자로부터 압수한 22억원 반환 막고
피해자 1500명 한명씩 연락해 법률구조공단에 인계
‘검사입니다‘ 전화에 ‘보이스피싱’ 의심 부지기수
미등록 대부업자로부터 압수한 22억원 반환 막고
피해자 1500명 한명씩 연락해 법률구조공단에 인계
‘검사입니다‘ 전화에 ‘보이스피싱’ 의심 부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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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22억원이 다 (사채업자 피고인들한테)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화가 나지 않습니까. 피같은 돈 잃은 피해자들까지 떠올리면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죠.”
지난 7월 ‘공분’에 사로잡힌 검사 두명이 의기투합해 일을 벌였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범죄수익환수팀의 김지영 부장검사와 안제홍 검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여름휴가까지 자진 반납하며 한달 넘게 수화기를 붙잡았다. 단 1명이라도 피해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겠다는 믿음에서 김지영 검사와 안제홍 검사는 업무 외의 ‘이 일’에 몰두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22일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검사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2019년 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관할관청에 등록하지 않은 채 약 1280억원을 빌려주고 법정한도를 초과하는 연 1000%의 살인적인 이자율로 불법수익 160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미등록 대부업자 A씨·B씨 총 2명을 2022년 10월 말 기소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압수한 불법수익 22억원에 대해 몰수·추징 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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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해 8월 법원은 ‘22억원 몰수·추징’ 보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압수물이 해당 사건 범행으로 취득한 물건이라는 증거가 없어 몰수할 수 없으며, 초과이자는 피해자들에게 반환해야 해 추징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결국 기각이 됐죠. 그런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어떻게하면 피해자들을 최대한 도와줄 수 있을까, 틈만 나면 그것만 골똘히 연구했습니다.” 김지영 검사와 안제홍 검사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했지만 몰수·추징 구형이 기각된 상황을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법원의 몰수·추징에 대한 기각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피고인들(사채업자들)에게 압수물이 반환돼 고액의 초과이자를 납부한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두명의 검사는 피해자 구제 아이디어를 연구했다. 그러던 중 올해 7월 서울 서부지검 범죄수익환수팀은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서부지부와 손을 잡았다. 검사들의 ‘공분’에 공감한 엄욱 법률구조공단 서부지부장이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하면서다. 그렇게 검찰과 공단은 미등록 대부업자들에게 초과이자를 납부한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공익소송의 필요성을 논의한 뒤 법률상담과 소송대리를 진행하는 업무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검찰은 전담팀을 편성하고 초과이자를 지급한 피해자 2200여명의 연락처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나섰다. 팀의 형태로 시작되긴 했지만 처음에는 인력이 부족해 김지영 검사와 안제홍 검사가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했다. 이들은 번호가 파악된 피해자 1500명 중 피해액 규모가 큰 이들부터 순차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압수물에 대한 보전조치 방법 등을 안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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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초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피해금액 크기와 피해자의 절박함은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액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죠. 잃은 돈이 숫자상으로는 적어 보여도 누군가에겐 전재산일 수 있잖아요.” 김지영 검사는 피해액 규모와 상관없이 피해자 1500명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략을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검찰 내 다른 팀에 협조를 요청하며 수사관 5명을 추가로 배치받는 등 범죄수익환수팀이 확대 재편성되는 데 힘썼다.
“연결이 되자마자 바로 끊는 사람도 있었고, 검사라고 소개하자마자 ‘그렇게 살지 말라’며 반말과 욕부터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안제홍 검사는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면 욕부터 먹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유선상으로는 지원 절차에 대한 안내 정도만 이뤄지고, 구체적·실질적 지원은 대면으로 진행된다’는 말로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검찰청 앞에서 나(피해자)를 납치해 장기 적출하려는 계획인 것 아니냐,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반면 피해금액을 다시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으니 최대한 검찰-법률구조공단에 협조하겠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공익소송에 함께 해야겠다며 여수, 대구 등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검찰청을 방문한 이들도 있었다. 또 몇몇 피해자의 경우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해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미안해하며 피해금액 회복을 위해 힘쓰는 검찰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안제홍 검사는 특히 이번 사건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개인 회생까지 고려한 피해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피해자로부터) ‘덕분에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일을 무조건 끝까지 해내야겠다는 각오가 단단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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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노력 끝에 서부지검 범죄수익환수팀은 지난달까지 피해자 1500명 중 200여명(피해액 합계 약 15억원)의 피해 진술을 듣고 법률구조공단에 인계할 수 있었다. 공단은 피해자 200여명에 대한 법률 상담을 진행한 뒤 이중 경제적으로 취약한 피해자 41명을 대리해 민사소송을 제기, 피해 지원에 나섰다. 공단은 또 대부업자의 압수물 반환 청구권에 대한 가압류 신청과 부당이득 반환소송을 제기했으며, 향후 40여명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공익소송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지영 검사와 안제홍 검사는 “혼자였으면 절대 할 수 없었다. 피해 입은 사람들과 그들의 돈이 조금이라도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여럿의 선한 마음들이 모아져 이룰 수 있었던 일”이라며 “앞으로도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검찰로서 묵묵히, 또 성실히 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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