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기(31) 작가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 4전시실에 전시한 ‘언내츄럴 스팩터클(UN/NATURAL SPECTACLE)’. 안윤기 작가 제공 |
홍준표 대구시장의 초상화를 대구미술관에 걸었던 사건을 풍자한 작품의 전시가 일방적으로 폐쇄돼 논란이 일고 있다.
‘2024 올해의 청년 작가전’이 한창인 27일 대구시 달서구 대구문화예술회관 5개의 전시실 가운데 4전시실 문만 굳게 닫혀 있었다. 행사장 앞 전시 설명에도 4전시실 소개만 빠졌다. 이곳은 올해의 청년 작가로 뽑힌 안윤기(31) 작가의 전시실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이번 전시를 “청년 작가들의 작업은 일종의 실험실과 같다. 이번 전시가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창조적인 시각을 통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소개했지만, 안 작가의 ‘실험실’은 관람객을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했다.
4전시실은 전시 개막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폐쇄됐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쪽은 이날 설치를 마친 안 작가의 작품을 본 뒤 이미지 교체를 요구했고, 안 작가가 이를 거부하자 전시실을 폐쇄했다. 안 작가의 전시 소개가 담긴 전시 안내 책자, 온라인 홍보물 등도 모두 수정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지난 8일 낸 입장문에서 “예술창작 행위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에 해당하지만 개인의 초상권과 창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해당 작품이 애초 사업 취지와 목적에 현저히 일탈하는 것으로 판단해 불가피하게 해당 전시실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 5개의 전시실 가운데 안윤기 작가의 4전시실만 굳게 문이 닫겨 있다. 김규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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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작가는 자신의 전시 ‘언내츄럴 스팩터클(UN/NATURAL SPECTACLE)’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의 고교 동기인 노중기 대구미술관장이 대구미술관에 전시했던 홍 시장의 초상화와 노 관장의 프로필 사진을 걸었다. 또 작가가 뒤를 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되며, 관객들은 이곳에 설치된 웹카메라 앞에서 버튼을 누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연혜원 기획자는 안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홍 시장과 노 관장의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소재로 한 소설 작품을 함께 비치했다. 이는 지난해 6월 노 관장이 대구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애초 전시 계획에 없던 홍 시장의 초상화를 건 사건과 지난해 12월 관장으로 임명된 과정을 풍자한 작품이다.
안 작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처음에는 (문화예술회관 쪽에서) 기관과 기관장을 무시한 행위라며 이미지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했고, 나중에는 저작권과 초상권, 인권 침해를 문제 삼았다”며 “기관의 명백한 사전 검열이며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해 작품 교체를 거부했더니 전시를 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전시될 작품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지적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하기로 협의를 했고 평론 글 등을 통해 충분히 작품 설명을 해왔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 5명의 청년작가 전시 가운데 안윤기 작가 전시 소개만 빠졌다. 김규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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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환 조형예술가 등 지역 문화예술인 300여명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 검열 대응 예술가연대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4전시실을 원상 복구시키려는 대응에 나섰다. 전시 기간은 다음달 14일까지인데, 그 전에 단 하루라도 전시장을 여는 것이 목표다. 안 작가가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상대로 낸 전시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은 다음달 4일 첫 심리를 연다. 또 전시를 열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공인의 초상이 전시에 등장해 풍자와 비평의 대상이 된 경우를 숱하게 목격해왔고, 이는 예술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라며 “이번 검열 사태는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예술의 활력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즉시 4전시장 문을 열라”고 촉구하면서 “판단은 시민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가처분 결과에 따라 대응하겠지만, 현재로선 다시 전시실을 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의 청년작가전’은 올해로 27회째를 맞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의 ‘대표 전시’다. 지역의 청년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로, 해마다 공모를 통해 청년 작가를 선발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대구시 산하 공기업인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아래에 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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