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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세상 읽기]지역소멸의 ‘위기탈출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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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를 때는 예쁜 줄 모르고 키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내내 아쉽다. 그런데 귀여운 아기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며칠 전 국민영양관리계획 우수기관으로 상도 탄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사업의 일환으로 여는 조리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영양플러스 사업은 임신부와 영유아의 취약한 영양 문제를 해소하고 식생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단위 영양프로그램이다. 보충 식품 꾸러미를 제공하고, 영양교육·상담 등이 이루어지는 사업 효능이 매우 좋은 보건복지 프로그램이다. 비수도권에서는 임신부와 영유아 부모는 다문화가족인 경우가 많다. 이날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유아 음식을 만들어보는 특강 대상도 다문화가족이었다. 농촌지역인 읍면 단위 참가자들은 드물고 주로 시내권에 거주하는 주민들 참여가 많았다. 이날의 메뉴는 강원도 특산물인 옥수수를 활용한 옥수수치즈전과 제철인 파래를 활용한 파래새우전, 서리태 콩조림, 아기들 먹기에 좋은 동부묵볶음이었다. 보충식품으로 콩을 받으면 겨우 밥에만 넣어 먹었다던 캄보디아 출신의 젊은 엄마에겐 ‘콩밥 탈출’의 날이었다.

나는 아기 엄마들에겐 열심히 요리수업 들으라 하고 꼬물꼬물한 아기들을 안아주는 절호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대체로 부부가 함께 참석하여 아빠가 아기들을 돌보고 엄마들이 열심히 동영상 촬영을 하며 요리 수업에 참여했다. 예쁜 아기들을 안아보려던 꿈은 깨졌지만 흐뭇한 장면이다. 다문화가족 연구에서는 한국인 아버지의 육아 참여, 외부 활동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결혼이주여성의 정착과 자녀들의 안정적 성장의 핵심 요건으로 꼽아왔다. 아버지가 참여하는 현장을 눈으로 마주하니 마음이 놓였다.

면 단위 농촌마을의 출산 소식은 지역 언론에 실릴 정도로 귀하고 드문 일이다. 작년 강원도의 한 농촌마을의 다문화가정에서 28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지역 전체가 축하를 전하며 갓난 아기에게 대학 장학금을 약속할 정도로 큰 경사였다. 그 면사무소 공무원 중에서 출생신고를 해본 경험이 있는 공무원이 부면장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사망신고는 익숙해도 출생신고가 낯선 면사무소가 어디 한두 곳인가. 국제결혼이라 칭했던 다문화 혼인의 역사는 30여년 전, 농촌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주로 도시권에서 이루어진다. ‘농촌 노총각’들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농촌에는 혼인적령기 사람 자체가 드물다.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를 보면 다문화 혼인은 2만431건으로, 전체 혼인의 10.6%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10쌍 중 1쌍이 다문화 혼인이었고, 1년 전보다 다문화 혼인은 3003건(17.2%) 늘었다. 전체 혼인이 1.0% 증가할 때 다문화 혼인 건수는 17.2% 늘었다는 의미다. 45세 이상 남성의 혼인은 다문화 혼인 건수가 더 많았고, 다문화 출생아는 1만2150명으로 전체의 5.3%를 점했다. 딱딱한 숫자의 의미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국제결혼커플’의 청첩장을 받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혼이주만이 아니라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은 9월 기준으로 268만9317명. 그중 ‘이나인’이라 부르는 비전문취업비자(E-9)로 들어온 외국인(31만6000여명)의 비중이 가장 높다. 농업지대와 산업단지가 뒤섞인 수도권 인근 농촌에는 하청업 형태의 자잘한 제조업체들이 많아 이주노동자 비율이 훨씬 높다. 고향인 음성군은 인구 9만여명에 등록 외국인이 1만3000여명으로 네팔인들이 많이 산다. 무거운 맹동수박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는 젊은이도 이주민이요, 뜨거운 철과 플라스틱을 다루는 이들도 이주민이다. 지역에서 고만고만한 원룸과 빌라를 세 줄 수 있는 이들도 이주민들이다. 이주민과 함께 보통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지역소멸 위기탈출 넘버원이다.

경향신문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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