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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트럼프 스톰’ 앞에 선 정의선 리더십 [스페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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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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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재집권으로 취임 4주년을 맞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리더십이 시험대에 섰다. 때마침 현대차가 트럼프 2기 시대를 정면 겨냥한 깜짝 인사를 단행하면서 현대차그룹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가 늘어났다.

이번 인사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재계와 산업계 시선을 끌었다. 현대차·기아를 총괄하는 부회장직을 신설했단 점과 국내 주요 대기업 가운데 사실상 처음 외국인을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것이다.

정의선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던진 메시지는 첫째도, 둘째도 ‘미국’이라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이 ‘깜짝 인사’로 주목받지만, 내년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세계 정치 경제 지형은 엄혹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대미 흑자가 높은 우리 자동차 산업이 관세 정책 최우선 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현대차그룹 경영 전략 불확실성은 대폭 확대됐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면 폐기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전기차 산업 지배력 확대에도 비상이 걸렸다. 정의선 회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내년 성장 전략 시나리오를 돌아보는 가운데, ‘미뤄온 숙제’ 지배구조 정비에도 속도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장재훈·무뇨스·송호성 ‘삼각편대’

6년 만에 부회장 부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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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장단 인사로 현대차그룹은 장재훈 부회장, 호세 무뇨스 신임 현대차 CEO, 유임된 송호성 기아 CEO 등 ‘3각편대’로 재편됐다. 장재훈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 취임 후 처음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현대차 창사 57년 만에 처음 외국인 CEO에 선임됐다. 송호성 기아 CEO는 이번에도 정 회장 신임을 받아 유임됐다.

장 부회장은 후선 업무로 물러났지만, 역할은 막중하다는 평가다. 우선, 장 부회장 선임으로 현대차그룹에선 6년여 만에 부회장 직제가 부활했다.

정의선 회장은 2018년 9월 수석 부회장에 오른 뒤 정몽구 명예회장 세대 김용환·양웅철·권문식·윤여철 등 4인 부회장단을 이선으로 후퇴시켰다.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른 정의선 회장은 그해 연말 인사에서 현대차 사장 출신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과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도 모두 퇴임시켜 사실상 부회장제를 없앴다. 이들 부회장단을 수식하던 ‘복심’ ‘2인자’ 등 표현도 정의선 회장 체제에선 자취를 감췄다.

장재훈 부회장은 정의선 회장 체제 첫 부회장이지만, 그 역할과 위상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과거 정몽구 명예회장 세대에선 4인의 부회장단이 총수 일가 대리인으로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 겸직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하지만, 수직적·1인 리더십 기반으로 작동했던 정몽구 명예회장 세대와 달리, 정의선 회장 체제에선 기업가정신 리더십(Entrepreneurial Leadership)과 집합적 리더십(Collective Leadership) 구현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의선 회장부터 전문경영인에 가까운 오너 경영자인 만큼, 그는 현대차그룹을 내연기관에서 미래 모빌리티 조직으로 전환을 위한 비전 확산, 정체성 재확립에 주력한다.

장 부회장 역시 정의선 회장과 리더십을 일정 부분 공유하며 계열사 간 시너지 제고, 미래 성장동력 발굴 등에 주력한다. 장 부회장은 상품 기획부터 공급망 관리, 제조·품질을 아우르는 완성차 밸류체인 전반을 관할하며 운영 최적화·사업 시너지 확보를 노린다. 송호성 CEO 역시 그룹 전체 시너지 제고 방안을 모색한다. 장 부회장이 ‘게임 체인저’로 언급한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와 전기 픽업트럭을 현대차와 기아가 공동 개발하는 방식이나, 기아가 최근 내놓은 1호 픽업트럭 ‘타스만’의 현대차 버전을 내놓는 방식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대미 통상 전문가 전진 배치

GPO 대미 전략 전초기지

이번 인사의 또 다른 메시지는 미국통 전진 배치다.

무뇨스 사장은 가솔린 세단 중심이던 현대차 주력 판매 차종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차, 하이브리드카(HEV)로 전환하고 브랜드 평판을 끌어올려 2018년 68만대였던 현대차 미국 판매량을 지난해 87만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깜짝 인사의 화제성에 가려졌지만, 내년 현대차그룹 경영 전략은 ‘시계제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 1기 때보다 더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우리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당선인 핵심 공약인 보편 관세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20% 관세를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다수 전문가도 우리 산업계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을 거두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 주력 산업 대부분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보면서, 대미 흑자 비중이 높은 자동차 산업이 최우선 타깃에 들 것으로 우려한다.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현재 무역수지 구도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면밀히 뜯어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을 집중 견제의 첫 타깃으로 삼을 공산이 높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에 달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자동차 수출은 대미 전체 수출량의 약 30%를 차지했다. 자동차 전문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2021년 9.9%, 2022년 10.6%, 2023년 10.7%를 각각 기록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가 안보와 대미 흑자 등을 이유로 자동차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의 고율 관세 부과·수입량 제한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이를 적용해 수입차에 관세 25%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했지만, 실제 통과되진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기간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량이 약 15% 줄어드는 피해를 봤다.

전기차 산업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권력으로 급부상했지만, 일찌감치 선두 지위를 구축한 만큼 전기차 산업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타격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전기차 판매 보조금 축소 또는 폐지는 오히려 현대차그룹 등 후발 주자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현대차그룹은 IRA 보조금을 받으려 북미 공장 설립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는데 보조금 폐지 땐 사업 계획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정통 외교 관료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사장으로 선임한 것에는 이런 우려가 깔려 있단 진단이다. 한국계 미국인 김 사장은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행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맡았다. 현대차는 김 사장에게 대외 협력·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부터 홍보·PR 등을 총괄하는 그룹 싱크탱크 수장을 맡겼다.

대미 통상 전략의 전초기지 역할은 해외 대관 조직 GPO(Global Policy Office)가 맡는다. 미 대선 판도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올 초 전략기획실 산하 조직이던 GPO를 사업부로 격상했다. 현대차그룹은 현 정부 초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김일범 부사장과 우정엽 전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 김동조 전 청와대 외신대변인 등을 줄줄이 영입해 대관 전열을 정비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6호 (2024.11.27~2024.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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