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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고체도 액체도 아닌 양자물질, 세계 첫 관측[이달의 과학기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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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고분해능 분광기 세계 3번째 개발

이론만 있던 '액체 결정' 실체 확인

초전도체 등 혁신기술 경쟁력 제고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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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2월 수상자로 선정된 김범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액체와 고체 성질을 동시에 갖는 ‘스핀 네마틱’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휴대폰에 쓰여 친숙한 액정은 ‘액체결정’의 줄임말이다. 이 액정이 고체와 액체의 동시 특성을 갖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종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액체와 같이 자유로이 움직이면서도 결정 분자의 배열이 규칙성을 갖는 식이다.

이처럼 양자역학적인 독특한 성질을 갖는 스핀 네마틱의 존재는 이론적으로만 예측됐지 실험을 통한 관측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원자 단위의 작은 자성을 가진 스핀은 네마틱이 되면 자성이 사라져 기존의 기술과 장비로는 관측이 어려웠는데 김 교수는 고분해능 X선 산란 분광기를 개발해 관측을 시도했다.

김 교수는 고분해능 X선 산란 분광기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해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설치했다. N극과 S극 2개의 극인 쌍극자 상태에 이르는 자석과 달리 네마틱은 자성을 띠지 않으면서도 네 개의 극으로 이뤄진 사극자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실험 도구가 쌍극자에서만 반응하는 까닭에 스핀 네마틱은 검출이 어려웠다. 반세기 전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네마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은 세웠지만 관측 자체가 어려웠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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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연구진은 사극자의 존재를 빛(X선)을 이용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설계했다. 김 교수는 산란된 X선 에너지 분석에 우선 집중했다. 프리즘을 이용해 빛을 색깔(파장)별로 분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분해 능력이 높아질수록 작은 파장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스핀 네마틱도 X선을 이용해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김 교수팀은 미국 아르곤연구소 연구팀과 협업해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분광기를 4년여에 걸쳐 개발하고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실험을 이어갔다. 아울러 라만 분광 장비를 자체 개발해 네마틱 발견에 일종의 선결 과제를 해결했다.

이후 연구진은 유력 고온 초전도체 후보 물질로 꼽히는 이리듐 산화물(Sr2IrO4)에 X선을 쬐며 스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이리듐 산화물은 230K(-43.15도) 이하의 저온에서는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지만 260K(-13.15도)의 온도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남아 있었다. 230~260K의 온도 범위에서 스핀 네마틱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사극자에 의해 산란된 X선은 비록 신호가 매우 약했지만 고유한 방위각 의존성을 가지고 있어 쌍극자와는 명확한 구별이 가능했다. 네마틱을 관측해낸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리듐 산화물에서 고온 초전도 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론적으로 스핀 네마틱 상도 스핀 액체처럼 스핀 양자 얽힘을 통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이리듐 산화물의 전자 농도를 변화시켜 가며 고온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해볼 계획이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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