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건지”
젊은 계엄군-경찰들 행동 고심
선결제-응원봉 시위도 달라져
대통령과 권력자들만 안 변해
“경찰청장 사퇴하라” 경찰의 1인 시위 9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경찰청 앞에서 경남 마산동부경찰서 류근창 경비안보계장(경감)이 조지호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창원=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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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혁·사회부 |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한 3일 밤 기자는 국회 경내에 들어가 취재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무장 계엄군이 동료에게 “있잖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동료는 위로하듯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줬다. 두 사람은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뒤돌아선 뒤 한동안 고개를 떨궜다. 그 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와 계엄군의 철수를 거쳐 유혈 사태 없이 상황은 종료됐다.
이후 일주일에 걸쳐 당시 계엄군의 상황, 국회 안에서 보인 행동의 이유 등이 조금씩 드러났다. 국회에 진입했던 제707특수임무단은 원래 이름과 나이는 물론 실제 모습 등 모든 신상정보가 비밀에 부쳐진 부대다. 하지만 국회에 투입된 순간 생방송 카메라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기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군인들은 외관상 상당수가 20, 30대로 보였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같은 날 동원된 경찰도 상당수가 젊은이들이었다.
민주화가 완성된 1987년에 태어난 이도 올해 벌써 37세다. 이들은 출생, 입학, 졸업, 입대 및 제대, 취업까지 전 생애를 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가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에서 보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을 ‘80년대 전두환식’ 낡은 계엄의 실행 도구로 사용하려 했다.
비(非)민주적인 명령과 시민들 사이에서 젊은 계엄군과 경찰들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방첩사령부 대원들은 임무 수행을 피하려 거리를 배회했고, 국회의 한 계엄군은 철수하며 시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국회경비대 소속 한 순경은 “집회에 참여한 분들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온 거라 생각한다. 그분들이 혹여나 불상사로 위독해지면 응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국회 출동 경찰은 “계엄 이후 동료들이 근무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방패도 들기 싫다고 한다. 우리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혹시나 또 한번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위법한 명령과 시민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찰도 있었다. 한 국회경비대 경찰은 “정당하지도 않고 올바른 근거도 없이 시민들에게 불이익을 주라는 지시가 또 내려진다면 그땐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역시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MZ세대는 발 빠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으로 국회 상황을 실시간 전파하며 군보다 빨리 움직였다. 주말에는 화염병 대신 케이팝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선결제’ 릴레이로 탄핵 집회에 나섰다.
누구도 납득 못 할 계엄의 밤, 군인도 경찰도 시민도 모두 40년 전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를 몰랐던 것은 불법적인 계엄이 성공할 거라 믿었던 대통령과 주변 권력자들뿐이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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