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삶 겨우 시작했는데" 귀국 거부
이재민 캠프도 열악 "의사 없이 출산도"
반군 지도자 "수감시설 폐쇄할 것" 언급
지난 11일 튀르키예 중남부 킬리스에 있는 국경 검문소 인근에 시리아 입국을 대기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킬리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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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사드의 몰락은 모든 시리아인들의 기쁨이지만, 폐허가 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렸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 통치를 피해 2018년 조국을 떠나 독일에 살고 있는 청년 하산 알자거(32)의 심경은 복잡하다. '13년 내전'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소식에 기뻐한 것도 잠시, 지금은 독일의 강제 송환 가능성에 밤잠을 설친다. 알자거는 시리아 반군이 알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이튿날인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당국으로부터 올 연말쯤 완료될 것으로 기대했던 망명 신청 절차 진행이 보류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난민 "폐허된 고향 돌아가기 겁난다"
11일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 곳곳에 퍼져 있는 시리아 출신 난민들 중 강제 송환을 우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를 떠났고 간신히 '제2의 삶'을 꾸릴 터전을 마련했는데, 이를 뒤로한 채 미래가 불확실한 고국 땅으로의 귀환을 꺼리는 것이다. 알아사드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시리아 반군이 해외 난민 귀국을 촉구하고, 이와 맞물려 유럽 각국이 시리아발(發) 난민 신청에 빗장을 걸고 있는 만큼 이들의 '귀국'을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나젬 알무사(36)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5년 아내, 두 자녀와 시리아를 떠난 그는 수단과 이란, 튀르키예를 거쳐 그리스에 터를 잡았다. 지금도 그리스 체류 허가 갱신을 매번 거쳐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험난했던 피란길을 거쳐 난민 신분으로 정착한 곳을 떠나기는 더 쉽지 않다는 게 알무사의 생각이다. 어느새 자녀 5명의 아빠가 된 그는 로이터에 "이미 그리스 학교를 다니며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아이들과 시리아로 돌아가 사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시리아 내부 사정도 좋지 않다. 반군의 공세를 피해 시리아 북동부로 밀려난 이재민들은 생필품 부족 등 열악한 환경에 신음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라카 등 북부로 떠난 피란민들은 음식은 물론 피란 거처가 없어 거리를 떠돈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은 배고픔과 추위로 울고, 임산부 중에선 의료 서비스 없이 이재민 캠프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다"며 인도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1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광장에 버려진 정부군 전차 앞에서 한 여성(맨 앞줄 가운데)이 시리아 반군으로부터 빌린 소총을 들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몰락을 축하하는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다마스쿠스=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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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정상국가' 구축 의지 피력
과도정부를 세운 반군 측은 국제사회에 '정상국가' 구축 의지를 거듭 내비치고 있다. 반군의 주축인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의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로이터에 보낸 성명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보안군을 해산하고, 수감 시설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범 수십만 명을 수감해 '인간 도살장'으로 악명 높았던 교도소를 없애는 등 알아사드 정권의 흔적을 지우는 한편, 인권을 존중하는 '정상적 정부'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군은 알아사드 정권 부역자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국경 검문도 강화하고 있다.
11일 시리아 라타키아에서 반군의 공세로 축출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무덤에 반군 병사들이 불을 지르고 있다. 라타키아=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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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은 또, 축출에 성공한 알아사드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무덤도 파손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반군 일부는 이날 시리아 서부 도시 라타키아 부근 카르다하 마을에 있는 하페즈의 묘지에 불을 질렀다. 하페즈는 1971년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권좌에 오른 뒤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시리아를 철권통치했던 인물이다. 애초 후계자였던 장남 바셀이 1994년 교통사고로 숨진 탓에, 차남 바샤르가 부친의 뒤를 이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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