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최초의 태양 플레어 기록, 멕시코에서 오로라 관측
통신·전력망·항공 마비… 지금 발생하면 미국서만 3700조 피해
미 연구진 “초대형 태양 플레어,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도”
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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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9월 1일 영국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은 태양에서 나오는 5분간의 흰색 빛 폭발을 관측했다. 곧이어 세계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극지가 아닌 중위도 멕시코에서 오로라가 관측됐고, 로키산맥의 광부들은 오로라의 빛을 일출로 착각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유럽과 북미 전역의 전신 시스템이 고장 났고, 전신 철탑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캐링턴이 목격한 것은 태양 표면에서 엄청난 양의 빛과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 이른바 ‘태양 플레어(flare)’였다. 캐링턴은 그날의 관측을 왕립천문학회지에 남겼다. 태양 플레어에 대한 첫 기록이었다. 하지만 캐링턴은 태양 플레어와 지구에서 벌어진 일의 연관을 확신하지 못했고 “한 번의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썼다. 과학자들이 태양 플레어와 그로 인한 지자기 폭풍이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게 된 것은 이후 몇 차례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뒤였다.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 태양 표면의 흑점(黑點)에서 발생하는 태양 플레어의 강도는 수백만 번의 화산 폭발에 비견된다. 태양 플레어는 고에너지 입자를 쏟아내는데, 지구에 도달하면 통신과 전력망은 물론 항공기 운항이나 GPS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대기·환경연구소(AER)는 캐링턴 사건과 같은 규모의 태양 플레어가 지금 발생하면 미국에서만 최대 2조6000억달러(약 3700조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태양과 태양 흑점 연구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 1613년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태양 흑점 지도를 그린 것이 시작이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1700년 이후 500명 이상의 과학자가 흑점 지도를 남겼다”면서 “흑점 연구는 현재까지 진행되는 연구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했다. 1848년 스위스 천문학자 루돌프 울프는 흑점 지도를 토대로 흑점 변화가 9.5~12년 주기로 일어난다고 했다. 오늘날 과학계의 정설인 태양 활동 11년 주기에 근접한 주장이었다. 태양 활동 극대기에는 흑점이 늘면서 태양 플레어나 코로나질량방출(CME) 같은 현상이 급증한다. 올해와 내년이 극대기에 해당한다. 지난 5월 강원도 화천에서 오로라가 관측되는 등 세계적으로 오로라가 넘쳐나게 된 것도 이 영향이다.
과학자들은 태양이 태양 플레어의 초대형 버전인 수퍼 플레어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한다. 수퍼 플레어는 1조 개의 수소 폭탄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과 같은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콜로라도 볼더대 연구팀은 지난 12일 사이언스 논문에서 “태양 같은 별에서는 대략 100년에 한 차례 수퍼 플레어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4년 치 데이터를 사용해 태양과 비슷한 온도·크기·밝기를 가진 별 5만6450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2527개의 별에서 2889개의 수퍼 플레어를 발견했다. 100년에 한 번 수퍼 플레어를 일으킬 확률인데, 예상보다 40~50배 높은 수치이다.
다만 과학자들은 태양에서 100년 주기로 수퍼 플레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거대한 태양 플레어가 쏘아낸 고에너지 입자는 지구 대기에서 이온화를 일으켜 산화질소 등을 생성하는데, 극지방의 빙하를 분석하면 태양 플레어가 강하게 나타난 시기를 역산할 수 있다. 태양 플레어가 나무의 나이테에 남긴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지구 역사상 최소 다섯 번의 수퍼 플레어 현상이 있었고, 서기 775년에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팀은 “수퍼 플레어의 발생 방향이 항상 지구를 향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태양의 수퍼 플레어를 지구에서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면서 “얼마나 자주 수퍼 플레어가 일어나는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한 번 발생하면 인류의 삶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수퍼 플레어를 제대로 알고 대비하려는 것이 이들의 연구 목적이다. NASA와 유럽우주국(ESA)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파커 탐사선과 솔라 오비터를 태양으로 보낸 것도 태양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서이다. 파커 탐사선은 오는 24일, 솔라 오비터는 내년 3월 태양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다.
[박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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