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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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의 생전 제자 중에 유마힐이라는 부유한 상인이 있었다. 유마힐은 부처를 따라 탈속하지 않았지만 재가(在家) 제자로 지내며 승려를 후원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전했다. 어느 날 문수보살이 그에게 “어떻게 하면 불도에 통달할 수 있는가” 물었다. 유마힐은 “도가 아닌 길을 가더라도 그것에 구애되거나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들이 기피하는 유곽과 노름방까지 찾아갔다. 유혹을 경계하며 밑바닥 사람들을 돕고 부처의 자비를 설법했다. 불가에서는 유마힐을 오늘날 법사(法師)의 원형으로 본다.
▶법사는 승려와 신도를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오래 쓰였다. 아무나 얻을 수 있는 호칭이 아니었다. 절 내에선 스님을 대상으로 불법(佛法)을 가르치는 학식 있는 스님이란 뜻이었고, 속세에선 해박한 불교 지식으로 포교하는 이를 뜻했다. 오늘날에도 종단이 시행하는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만 재가 법사가 될 수 있다. 태고종은 재가 법사를 승려의 일종으로 보지만 조계종은 포교사로 한정하고 스님을 보좌해 일반 신도를 가르치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법사가 남자 무속인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무속인들이 굿을 하며 각종 경문을 읽는 것조차 불교를 흉내 내 독경(讀經)이라고 한다. 이런 경문이 중국 송나라 때 도교 경전인 ‘옥추경’을 비롯해 수십 종에 이른다. 조선 중기 허균이 쓴 소설 ‘장산인전’에 ‘옥추경을 수만번 읽어 통달한 뒤 귀신을 부리고 요괴를 물리치는 신통력을 얻었다’고 서술된 걸 보면 그 뿌리도 깊다.
▶일명 ‘건진 법사’ 전모씨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혐의로 체포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다면서 자신을 국사(國師)가 될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는 보도도 있었다. 전씨는 일광조계종 소속이라 하는데 정식 불교 종파가 아니다. 일광조계종은 몇 해 전 제사상에 가죽 벗긴 소를 올린 적도 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 가르침과 거리가 먼 무속 의식이다.
▶종교인은 근대 이전엔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학식 있는 법사 중에도 경전과 계율, 불교 논문에 두루 조예가 깊으면 삼장(三藏)법사라 했다. 서기 7세기 인도를 다녀와 대당서역기를 쓴 당나라 고승 현장이 대표적인 삼장법사다. 국사도 그런 호칭 중 하나다. 고려 시대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지눌과 의천은 입적 후 왕실에서 보조국사와 대각국사 시호를 받았다. 어느 불교 종단도 소속 법사에게 굿을 하거나 점을 치게 하는 경우는 없다. 불교와 상관도 없는 무속이 활개 치는 일은 그만 보고 싶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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