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단독] 아버지 돌아가신 것마저 잊은 60대 치매환자 … '레켐비' 첫 투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달 문을 연 고려대 구로병원 '알츠하이머 예방센터'에서 1호 레켐비 투여 환자가 된 임 모씨가 지난 10일 의약품을 투여받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중 알츠하이머 예방센터를 만든 것은 이 병원이 처음이다. 이충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묻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그때가 부친상 치르고 이틀밖에 안 된 시점이었거든요.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치료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에요."

지난 10일 오전 9시 고려대 구로병원 본관.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임철수 씨(가명·66)와 보호자인 아내가 8층 처치실로 들어섰다. 20년 만에 탄생한 알츠하이머 신약 '레켐비'를 맞기 위해서다. 1호 환자로 선정된 임씨는 다소 긴장한 듯 보였다.

약이 투여되는 60분 내내 곁을 지킨 아내는 시종일관 '심호흡하라'며 그를 달래줬다. 사실 아내 역시 6개월 전 암 수술을 받고 추적관찰 중인 환자.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임씨 부부는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차분히 진료를 마쳤다. 이날 아내는 "레켐비를 맞았다고 해서 1년 새 갑자기 증상이 나아지는 건 아니라고 들었다"며 "그럼에도 남편이 아직은 극초기 경도인지장애라 치료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주치의 말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임씨가 인지저하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어느 날 아침 임씨는 '여기가 어디냐' '내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충격받은 가족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당시 신경심리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진행한 결과 경미한 뇌 위축 외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추적관찰을 이어오던 중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지난 10월부터다. 임씨는 어제 나눈 얘기를 기억하지 못했고 본인 집 주소도 잊어버렸다. 직업이 프로그래머인 그는 "A, B, C 순으로 입력값을 세팅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거꾸로 해둔 걸 보고 심각성을 느꼈다"며 "마침 좋은 신약이 나왔고 투여 타이밍도 잘 맞춘 만큼 얼른 직장에 복귀하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강성훈 교수


알츠하이머 치료의 판도를 뒤흔들 신약으로 평가받는 레켐비가 국내에 상륙하면서 환자들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는 알츠하이머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를 없애 뇌 속 신경세포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전을 갖고 있다. 지난해 7월 알츠하이머를 타깃한 항체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완전 승인을 받았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올해 5월 허가를 받았고 지난달 28일 시장에 본격 출시됐다.

고려대 구로병원은 레켐비 투여를 오래 기다린 국내 환자들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달 상급종합병원 최초로 '알츠하이머 예방센터'를 연 것이 대표적이다. 치매 진단을 받으려면 인지기능검사, 뇌 MRI,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 등을 거쳐야 하는데 통상 3개월가량 소요된다. 고려대 구로병원 알츠하이머 예방센터는 해당 기간을 한 달 내로 단축했다. 레켐비가 초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를 발휘하는 만큼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선행 검사의 패스트트랙을 구축한 셈이다.

센터장이자 임씨의 주치의인 강성훈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레켐비가 알츠하이머 진행을 27%가량 늦춰준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밀로이드가 덜 쌓인 집단을 따로 떼놓고 봤을 땐 지연 효과가 51%에 달한다"며 "하루라도 빨리,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 투여하면 좋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쓰인 치매 치료제는 4종인데 모두 20년 전에 개발된 것이라 레켐비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다만 뇌부종, 뇌출혈과 같은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예방센터에 등록된 환자는 40여 명이다. 이 중 임씨를 포함한 13명은 첫 투약 일정이 모두 잡혀 있다. 해당 환자들은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총 1년6개월간 레켐비를 맞을 예정이다.

약제 구입에 추적검사까지 합하면 전체 치료 비용은 약 4500만원이다. 강 교수는 "국내 도입된 신약이 급여화를 시도하기까지 2~3년 걸린다고 들었다"며 "미국이나 일본은 레켐비에 대한 보험이 잘돼 있는 편이라 투여 환자 수도 많고 데이터도 상당히 쌓였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비 부담이 크지만 치매 증상은 오늘까지 괜찮다가도 내일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치료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심희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