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1 (화)

[세상 읽기]일상 - 계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처음엔 지독한 농인 줄 알았다. 몇번이나 눈 비비고서야 현실임을 알아챘다. 세 번째 밀레니엄을 시작하고도 24년이 지난, 그것도 해가 저무는 12월3일 아닌 밤중에 1979년 군사 반란과 1980년 비상계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괴기한 일이? 탄식도 잠깐, 곧 모두 박차고 일어나 추락하는 역사를 끌어올리려 자발적인 투쟁에 나섰다. 무장한 계엄군이 무너뜨리는 국회를 맨몸의 시민이 일으켜 세웠다. 또 다른 계엄을 막기 위해 매일같이 국회 앞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일상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회적 경계가 흐려지고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모두 하나 되는 연대의 공간이 활짝 열렸다.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럼 이제 계엄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온 것인가? 아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면 바로 일상을 회복할 것인가? 문화사회학자인 내 눈에는 다른 게 보인다. ‘일상-계엄!’ 우리의 일상은 그 자체로 계엄이 아니던가? 다원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상의 삶은 고유한 재화를 생산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경제 영역은 정의보다 ‘부’를, 정치 영역은 영향력보다 ‘권력’을, 종교 영역은 세속적 보상보다 ‘구원’을, 과학 영역은 신앙 대신 ‘진리’를 생산한다. 이러한 다양한 재화는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수 요소다.

하지만 각 영역은 고유한 재화를 생산하면서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경제 영역은 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려고 평등보다는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다. 정치 영역은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려고 엘리트주의적인 배타적 관료주의에 의지한다. 종교 영역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수직적 사회적 관계로 구성된다. 과학 영역은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일반인 사이의 위계적 관계가 나타난다. 이렇듯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원적 영역은 가만히 놔두면 비민주적 속성을 띠게 된다.

모든 영역의 꼭대기를 비민주적 우두머리가 차지한다. 기업엔 CEO 대신 ‘총수’, 검찰엔 청장 대신 ‘총장’, 교회엔 목사 대신 ‘교주’, 대학엔 교장 대신 ‘총장’이 군림한다. 전문직종이라 불리는 관료제적 행정이 이를 떠받친다. 전문직종은 전문적 훈련을 받아 그 분야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상은 일관되게 합리화되고 체계적으로 준비된 명령을 정확히 실행할 수 있도록 훈육받은 것에 불과하다. 전문직종 안에서 모든 개인은 비판을 무조건 중단하고 확고부동한 명령을 수행한다. 일상의 회의는 우두머리의 훈시와 명령 하달로 이뤄진다. 나머지 회의는 모두 우두머리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형식 의례에 불과하다. 전문직종이 가득한 국무회의에서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계엄 선포가 통과된 이유다.

정말 이런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결단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부장제라는 악한 유습만 탓하기에는 사태가 단순치 않다. 오히려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전문직종 체계가 지닌 근본 결함을 직시해야 한다. 전문지식이 이미 대중적으로 확산한 지식사회에서 인지적 암기능력만 뛰어난 일부 전문인이 지식의 생산, 유포, 소비를 ‘독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검찰 공화국’ 아래 일상을 힘겹게 버텨오면서 우리는 거듭 확인했다. 법 지식을 독점한 법조인은 시민 연대를 위해 자율성을 발휘하는 전문인이 아니다. 좁은 실정법을 뛰어넘어 보다 일반화된 시민 언어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조절할 능력이 아예 없다. 전문직종이 ‘일상의 계엄화’를 제도적으로 떠받치는 반민주 세력이라는 것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애초부터 전문직종의 탄생은 대학 교육과 맞물려 있었다. 전문직종의 반민주적 성격을 바꾸려면 이제라도 대학에서 ‘딸딸딸 암기훈련’이 아니라 ‘성찰적 인문사회 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